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차탈회위크 (문단 편집) == 건축학적 특징 == [[파일:터키 차탈회윅 1.jpg]] 예상 복원도 차탈회위크는 기원전 7100년 무렵 건설되었다고 추정한다.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에 있는 [[예리코]]와 함께 인류 역사상 현존하는 가장 초창기 무렵의 도시 유적인데[* 건설시기는 [[예리코]]가 더 이르다. 이쪽은 무려 기원전 1만 년 즈음까지 올라가는 유적지다.], 흔히 생각하는 도시를 떠올리면 곤란하고 대강 수백 명에서 많아야 만 명 정도가 거주했다고 추측한다. 건물도 이후 시대와 비교하면 형태가 꽤나 색다르다. 입구가 건물 옆면이 아니라 옥상에 있는데, 외적이나 맹수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구조는 초창기 도시 유적들의 특징으로,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역시 같은 목적으로 입구를 옥상에 설치했다.[* 다만, [[모헨조다로]]는 일반적인 건축물처럼 문이 옆에 나있는 경우도 흔했는데, 이는 도시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형태라서, 차탈회위크보다는 훨씬 방어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 내부를 이동할 적에는 건물의 옥상을 걸어서 넘어다녔으리라 여긴다. 건물에는 출입구 이외에도 굴뚝 역할을 하는 구멍이 따로 있었거니와 유적 바깥에 동물 배설물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므로, 오물이나 쓰레기를 건물 밖으로 내버렸다고 추정한다. 차탈회위크의 각 건물들의 대부분이 방이 두 칸이었다. 하나는 남쪽에 조리실과 화덕을 갖춘 주방 겸 침실, 다른 하나는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던 공작실로 쓰였다. 유적 자체는 [[진흙]]을 말려서 만든 [[벽돌]]로 지었는데, [[아나톨리아 반도]]에서는 돌보다는 흙을 구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