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징병제 (문단 편집) === [[오합지졸]], 떨어지는 [[전투력]] === >사공! 적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적이 어중이떠중이를 모은 100만이라면 '''우리는 [[모병제|가려뽑은]] 10만입니다.''' 우리 병사 한 명이 적병 10명을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 >[[순욱]], [[관도대전]] 중 [[조조]]에게 조언하며. 이미 지휘관들은 2000년 이전부터 징병제의 단점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하게 일하던 사람들을 돈도 안주고 갑자기 징집해서 무기 주고 싸우라고 해도 훈련도도, 사기도, 열의도 낮고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사람이 죽고 비명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공포가 번지면 순식간에 부대가 무너지거나 [[탈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극적인 사례를 살피면 [[폴란드]] [[윙드 후사르]] 100기와 판체르니 300기로 40,000의 [[크림 칸국]] 주력을 갈아버린 적이 있다. 당시 타타르 칸국은 문화적 뿌리를 몽골에 두었기에 군역이 있었고, 그에 따라 동원된 4만의 침공군이었던 반면, 폴란드 윙드 후사르는 발칸계 자원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고도로 훈련된 병력이었다. 이 훈련의 차이가 말 그대로 일당백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는 [[후스 전쟁]]에서 혁신적인 농민병 훈련 및 전술로 황제의 잘 훈련된 기사와 용병을 무참히 박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얀 지슈카]] 전 까지는 상식이었다. 근대전에서는 서남전쟁 당시 사츠마군은 낡은 전장식 화기와 냉병기로 무장한 사무라이들로 이루어졌는데 근대식 화기로 무장한 징집병들을 압도하였으며, 결국 사무라이들을 모아서 경찰 발도대를 창설하여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현대전, 그것도 장기전으로 보자면 로디지아군은 [[게릴라]]에게 밀리고 있던 걸 징집까지 하며 버티려고 했지만 무리였고, 결국 용병을 고용하는 데 1 : 8의 교환비를 내며 게릴라를 완전히 압도하였고, 게릴라를 괴멸 직전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다. 결국 [[남아공]]의 지원이 끊기면서 이기진 못했지만. 이는 물론 지휘관 역시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는다. 과거의 사례를 살피면 완안진화상은 20배 정도의 몽골 [[기병]]을 격파한 적 있다. 당시 몽골이 점점 강력하게 되던 시기인 점을 고려하면 병력의 질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데 이 점을 고려하면 병사들만이 아니라 지휘관 역시 질적 우수성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센이나 독일 제국 역시 질적 우수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총력으로 싸워야 할 때를 제외하면 군대 규모를 잘 늘리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