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징기스칸(그룹) (문단 편집) === 레슬리 만도키 === [[http://dk-english.blogspot.com/2010/11/how-they-live-leslie-mandoki.html?m=1|#]] 본명은 라슬로 만도키(László Mándoki). 루이 포트기터가 유명해서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레슬리 만도키가 '''징기스칸의 리더'''다. 재미있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엄청나게 고생한 사람이다. [[1953년]] [[1월 7일]]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그룹 내에서 원년 멤버 중 헨리에테 하이헬과 함께 가장 나이가 어렸다.] 능숙한 드럼 연주자로 징기스칸의 곡 Rocking son of dschinghis khan에서 빠르고 훌륭한 드럼실력을 볼 수 있다. 그는 [[1970년대]] 초 부다페스트에서 음악을 배웠고 야당 학생운동 밴드, JAM이라는 지역 재즈밴드의 리더였다. [[1975년]] 추포 가보르,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여러차례 서부로 가려 했으나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자, 8km길이의 [[오스트리아]]-[[유고슬라비아]]를 연결하는 철도 터널을 [[슬로베니아]]에서 출발해 서부로 달아났다.[*이때 무장한 경비의 눈을 피하려 춥고 축축한 풀숲에서 사흘을 있었다고 한다. 소지품과 악기는 모두 두고온 상태로 옷 몇 벌 정도밖에 없었으며 군인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을 때 개들에게 날고기를 던져주고 미친듯이 달려갔다고 한다. 군인들이 자신들을 쏠 때 주저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에 자갈이 운동화를 찢어서 발가락에 피가 나고 쥐가 몸을 물어댈 정도로 달려서 기관차에 치이지 않고 4시간을 더 가서 보니 오스트리아의 변전소를 발견했고 [[독일어]]를 못 했기에 '위험'이라는 글자를 모르고 다음 역까지 달려가 '[[스웨덴]]에 가서 [[미국]]으로 가려고 했다'라고 말했으나 이들은 [[뮌헨]]으로 보내졌다.] 그 후 난민 캠프에서 잠시 머물고 술집과 바에서 연주를 하며 지내다가 뮌헨에서 음악을 하며 [[1979년]] 징기스칸으로 데뷔하여 징기스칸의 노래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동료와 함께 음악 스튜디오를 설립해 솔로앨범을 발표하였고 [[1985년]] 그룹 해체 후에는 [[1986년]] 징기스칸 패밀리를 결성하기도 했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방한해 에바 체프레기(Eva Csepregi)라는 자신처럼 헝가리에서 태어난 여성 가수와 함께 Korea라는 노래[* 여담으로 [[케야키자카46]]의 [[Ambivalent]]가 이 노래를 표절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를 발표했는데 이게 인연이 되어 그녀와 결혼하여 자식들도 여럿 두었다. 프로듀서로서 다른 가수들과 협업하기도 하였고 현재는 Mandoki soulmates라는 밴드로 활동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