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징기스칸(그룹) (문단 편집) == 영상 == [youtube(JhDHtKpfP0o)] 위 영상은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Moskau|모스크바]]' 다. 어떤 러시아인이 이 노래를 들은 후 보인 반응 "가사가 어쩐지 웃긴다" 였다(...) --잘 보면 합창단원들도 무언가 웃긴가보다-- ~~댄서들이 진짜 웃는거였다~~ [[소치 동계올림픽]]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촬영했는데 [[러시아인]]들은 --독일과 징기즈칸이 둘 다 러시아를 초토화 시킨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토화시켰지만 결국 둘 다 몰리치고 오히려 [[러시아]]/[[소련]]의 영향력 아래 뒀다. [[동독]]은 소련의 영향을 크게 받은 공산 블럭에 속했고 [[몽골 인민 공화국]] 또한 소련의 사실상 [[위성국]]이나 다름없는 수준까지 갔다. 1980년 기준으로 초토화시킨 건 과거의 일이지만 종주국 행세를 한 것은 현재의 일이니 승자의 여유를 부릴 수밖에.] 이 곡이 마음에 들었는지 2013년 새해 축제 방송에도 이 음악을 틀고 아예 원작을 초월한 댄스 쇼까지 벌였다. 그것도 '''[[붉은 군대 합창단]]까지 초청해서!!''' 1절은 "모스코(Moskau)",[* 원곡이나 붉은 군대나 발음이 모스'코'쪽에 가깝다.] 2절은 "마스크바(Москва)"라며 각각 [[독일어]]와 [[러시아어]]로 부르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youtube(iMCBN97ws-U)] 이들의 노래 중에는 '''「[[코리아]]」'''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징기스칸이 아니라 레슬리 만도키와 [[뉴튼 패밀리]]의 리드보컬 에바의 듀엣 곡이다.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MBC]] 서울 국제 가요제 관련으로 이들이 서울을 방문하였을 때 뉴튼 패밀리는 가요제에 직접 참여했었고 징기스칸은 게스트 가수로 초청되었다. 이때 둘이 사귀게 되어 만들어진 곡. 당시 국내 TV에서는 대놓고 사랑의 듀엣 운운했었다. [[홍콩]]이나 [[일본]] 아이돌의 리메이크판도 있다. [[http://yurion.net/2256|리메이크도 되었다]]. 그래서 일본어 음악이 금지되던 시절에 내한 방송했다. 그래서 이 당시에도 [[핑크레이디]]나 [[마츠다 세이코]] 등의 영어 앨범은 국내 발매가 되었었다. 한국에서는 소녀대 버전이 더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소녀대를 패러디해서 만든 한국의 걸그룹이 그 유명한 [[세또래]]다.] 만도키와 에바 선이 초대받았던 서울 국제 가요제에서 출연했던 '''한국 지상파 방송을 탄 최초의 일본인 가수'''가 바로 소녀대였을 정도로 이미 한국에서 인기가 좋았기 때문. 사실 일본 노래가 금지된 시절이었기 때문에 소녀대를 아는 사람만 알았고 소녀대가 원래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기보다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덕분에 대한민국에 더 알려지고 인기를 더 많이 얻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야 한다. 이 노래를 리메이크했기에 한국 지상파에도 자주 언급되었고 일본의 아이돌 그룹이 유럽 친한파 가수들의 노래를 불렀다는 게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기에 조명을 더 많이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 소녀대가 홍보가 많이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소녀대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 하자마자 방송에 언급되고 원곡을 초월하는 인기로 순식간에 퍼져버렸다. 검은 고양이 네로로 유명한 박혜령은 한국판으로 번안해서 불렀다. 죽을 때까지 가수를 한다고 한다. 하술하겠지만 이미 고인이 된 루이 포트기터와 스티브 벤더, 그리고 탈퇴한 레슬리 만도키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은 원년멤버인 볼프강 하이헬, 헨리에테 하이헬, 에디나 팝은 2005년 징기스칸으로 다시 뭉쳐서 2기 징기스칸[* 슈테판 트라크, 클라우스 쿠프라이트, 앙겔리카 에를라허, 람 비랏 페노이, 얀 그로스펠트 등의 젊은 멤버들이 합류하였고, 이들이 사실상 2대 징기스칸 멤버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기타에 후술하겠지만 2020년 갑작스레 사망한 요하네스 쿠프라이트도 이곳에서 멤버로 활동을 해왔다.]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특히나 최연장자인 에디나 팝은 칠순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가수를 한다. 이들이 환갑이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수를 하는 이유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함인 것이고 백댄서로 활동하는 가수들을 이들의 후계자로서 칭기즈 칸의 원래 멤버들이 수명이 다해 죽게 될 경우 그룹을 물려받아서 활동하기로 되어있다. [youtube(Dx_IngAUh6Y)] 2012년 1월 1일 징기스칸 라이브. ~~칸이 웬 [[잭 스패로우]]로 바뀌었다.~~ 현재는 루이 헨드릭 포트기터가 에이즈로 인해 1993년에 향년 42살의 나이로, 스티브 벤더가 2006년에 향년 59살의 나이로 각각 세상을 떠나고 2007년에 레슬리 만도키가 탈퇴하여 현재는 에디나 팝과 볼프강 하이헬, 헨리에테 스트로벨(헨리에테 하이헬)이 남아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고령이 되어 버려서 특히 에디나 팝은 이미 칠순이 넘어가버리는 바람에 격렬한 댄스는 하지 못하고 대신 백댄서들에게 담당시키고 자신들은 노래만 부른다. 헨리에테 하이헬은 젊은 시절 굉장한 미인이였다. 나이를 먹고도 매우 곱게 늙었다. 레슬리 만도키는 솔로로 나와서 코리아라는 노래로 [[한국]]에 알려진 바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한국에 대하여 꽤 찬양하면서 한복이나 여러 가지 한국 모습도 나왔다. 다른 그룹 조이의 '코리안 걸'이란 노랠 부른 적이 있다. 노래 시작 전에 작게 "안녕하세요, 한국 아가씨" 이런 한국말까지 직접 했다. 이 노래와 더불어 한국 찬양하는 팝송이라고 오래전 꽤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조이의 경우 일본에서는 'Japanese Girl' 로 노래 제목을 바꾸고 일본어로 인사를 하는 등 아시아 각국에서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먹었다(...) 정확히는, Joy의 노래는 Japanese Girl이 원곡이며, 한국에 발매한 앨범에만 Korean Girl로 바꾸어 부른 버전을 수록한 것. 지금 한국이나 한국 가요계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게 웬 장난? 하겠지만 서울 올림픽 이전의 한국은 한국 하면 한국전쟁을 먼저 떠올릴 정도에, 동남아 각국보다 인지도가 없었다. 여러 이유로 1980년대 해외 그룹들은 [[빌리지 피플]], 둘리스, 놀란스, Joy, 데이비드 라임 등 많이 내한했지만 대부분 반주 틀고 립싱크 비슷하게 몇 곡 하고 떠난 정도, 어디 낮선 나라에 왔다 갔다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다. 서구권 가수가 제목이라도 Korea로 바꾼 정도라도 신경을 쓴 경우는 이전에 전무했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BTS급은 아니고 한 2군 정도 되는 K-POP 아이돌이 동남아 순회 공연 하면서 태국, 베트남 등 좀 유명한 나라가 아닌 미얀마나 라오스 정도의 국가도 같이 방문하면서 그 나라 관련 명칭을 노래에 집어넣어서 부른 경우다.] 가수로 활동하면서 노래는 노래대로,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대로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2중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특히 '''칸'''이라는 시스템을 적용하여 각 멤버는 각자의 칸 명칭을 부여받아 노래 부르는 중간중간마다 칸이 각종 퍼포먼스를 보여주도록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메인으로 활동하는 멤버가 징기스칸이라는 명칭을 받으며, 1대 징기스칸은 루이 포트기터가 담당해 왔으나 그가 사망한 후에는 슈테판 트라크가 2대 징기스칸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슈테판도 탈퇴[* 정식 멤버로는 2018년 탈퇴해서 싱글 앨범도 낸 바 있으나, 프로듀서로서 계속 징기스칸 앨범에 참여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하면 [[클래지콰이]]의 프로듀서 DJ 클래지와 약간은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다.]하고 현재는 클라우스 쿠프라이트가 "Igei Khan"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 리더(징기스칸 팀의 수석 안무가 역할)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운영하는데도 가창력이 떨어지지도 않다. 정상급 가창력을 선보이면서도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에 매 공연마다 팬들에게 극찬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