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진(삼국지) (문단 편집) == [[삼국지(정사)|정사]] == [[유비]]가 형주목을 겸임할 때 초빙되어 종사가 되면서 관하의 여러 군을 다스렸다고 하며, 유비를 수행하여 촉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촉 평정 이후에는 촉군의 복부도위, 문산태수, 건위태수를 거쳤으며, 225년에는 상서로 임명되었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227년에 중서령이 되었고 이후 상서령에 승진하면서 손오에 사신으로 갔다. 229년에 [[손권]]이 황제를 칭하자 위위가 되면서 오나라에 즉위를 축하하도록 보내졌는데, 이 때 [[제갈량]]이 [[제갈근]]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진에 대해 충성스럽고 순박한 성격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독실해진다고 평가했다. 오나라의 국경으로 들어가 관소의 관리에게 우호의 뜻을 보이는 문서를 보냈으며, 무창에 들어가 손권과 함께 제단에 올라가 희생의 피를 마셔 맹약을 하면서 위나라를 점령할 경우에 대한 양국의 땅 분배를 논의했다. 귀국하자 성양정후에 봉해졌다. 이때 정해진 영토는 [[서주(중국)|서주]], [[예주]], [[유주(중국)|유주]], [[청주(중국)|청주]]는 오의 땅, [[타이위안|병주]], [[기주#s-1]], [[연주(중국)|연주]], 양주는 촉의 땅으로 하면서 사예는 [[함곡관]]을 경계로 나누자고 했으며, 이러면 촉이 [[시안시|장안]], 오가 [[낙양]]을 소유하게 된다. 이 구도는 후일 [[북주]]와 [[북제]]가 병립한 시절의 영토와 상대적으로 비슷한데 촉한이 북주 포지션이 되고 손오가 북제 포지션이 된다. 다만 차이라면 북제와 달리 오는 북제+[[진(육조)|남진]]의 영토가 다 포함된 상태라, 촉 입장에선 영안을 틀어막아 남쪽의 공격을 막고 북에서 먼저 짓누르는 형세로 화북을 우선 빼앗는 수고로움이 있으나 손오가 함곡관을 틀어막은 촉을 공격하는건 더 어렵다는 점이 있다. 은근히 촉에게 유리한 협정인 셈. 진진은 이전에 [[이엄]]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제갈량에게 조언했다고 하는데, 이엄이 군량 수송에 대한 책임 회피를 하면서 그 말이 맞아떨어져 제갈량은 [[제갈근]], [[동윤]], [[장완]] 등에게 편지로 그를 칭찬했다. 장완과 동윤에게 보내는 글에서 보면 제갈량은 진진의 안목을 칭찬하는 것처럼 표현하였으나, 진진의 이름을 빌려 기대를 배신당한 것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진효기가 오나라로 떠나기 전 내게 이정방의 뱃속에는 인갑이 있어 동향 사람들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이라 하였다네. 나는 그가 간교하다면 그 성정을 건드리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방이 소진과 장의처럼 궤변을 부리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질 못했지. 효기가 이 사실을 알게 했으면 좋겠네. 235년에 진진은 세상을 떠났고, 아들 [[진제(촉한)|진제]]가 후사를 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