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여 (문단 편집) == 평가 == 장이와 진나라 치하에서는 문경지교라 할 정도로 우정을 나눴으나, 막상 각자 제후가 된 후에는 서로 원수지간이 된 때문에 우스운 꼴이 되었는데, 이 두 사람의 사이는 '''우정의 덧없음'''의 사례가 되어, [[괴철]]이 한신을 설득할때도 언급되었다. 당시 괴철의 언급에 따르면,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사마천은 장이와 진여에 대해 '장이진여열전'에 이러한 평가를 남겼다. >'''장이와 진여는 현자라고 세상에 전해져 칭송받고 있다. 그의 빈객들과 심지어는 잡역부에 이르기까지 천하에 호걸이 아닌 자가 없었고 머물렀던 나라에 경상의 자리에 앉지 못한 자가 없었다. 그러나 장이와 진여가 처음에 뜻을 얻지 못하고 빈천할 때 서로 동생동사하자며 신의로써 결의를 맹세한 일은 추호도 후회하지 않는 의로운 행위였다고 할 수 있었다.''' > >'''이윽고 그들이 나라를 차지하고 권력을 다투자 결국은 서로 공격하여 멸망하고 말았으니 어찌하여 처음에는 서로 사모하기를 지성으로 하더니 나중에는 서로 배신하기를 그리 심하게 했는가? 그들은 결국 권세와 이로써 서로 교제했음이 아니었는가? 명예가 비록 높고 찾아오는 문객들이 비록 성시를 이루었을지라도, 그들이 걸었던 길은 아마도 오나라의 태백(太白)이나 연릉계자(延陵季子)[* 태백과 연릉계자는 각각 춘추시대 오나라의 시조인 태백과 그 먼 후손인 계찰을 가리킨다. 의를 위해 군주의 지위마저 포기한 인물들.]가 행한 의와는 다르다고 하겠다.''' [[분류:초한쟁패기/인물]][[분류:기원전 205년 사망]][[분류:카이펑시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