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수(역사가) (문단 편집) == 《삼국지》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 == [[정의(삼국지)|정의]], [[정이]] 형제가 [[위(삼국시대)|위나라]]에서 굉장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수가 그 자식들에게 "쌀 천 곡[* 斛 : 고대 부피ㆍ무게 단위. 당나라 시기까지는 민간에서 '섬'을 일컫는 속칭으로, 1곡 = 1섬 = 10말 = 120근이었다. 송나라 이후로는 1곡 = 5말로 바뀌어, 2곡 = 1섬이 된다.][* 섬과 석은 같은 단위인데, 당시 태수나 좌장군의 녹봉이 2천석이었다. 즉 천곡이면 지방장군이나 고위급 장성 1년 연봉에 절반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이다.]을 주신다면 귀하의 아버님들을 위해 훌륭한 전(傳)을 써드리리다." 라고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진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진수는 정의, 정이 형제의 열전을 저술하지 않았다고 한다.[* 《진서(晉書)》·<진수전(陳壽傳)> : 丁儀、丁廙有盛名於魏,壽謂其子曰:"可覓千斛米見與,當為尊公作佳傳。" 丁不與之,竟不為立傳。[[https://zh.wikisource.org/zh-hant/%E6%99%89%E6%9B%B8/%E5%8D%B7082|출처]]] 그런데 진수가 태어나기 13년 전(220년)에 [[조비]]가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정씨 형제와 이들 일족의 남자들을 모두 처형했기에 자손이 남아있을 수가 있겠냐는 의문점이 있어 이 기록은 신빙성을 의심받는다.[* 《삼국지》권 19·<위서>·<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 文帝即王位,誅丁儀、丁廙并其男口。[[https://zh.wikisource.org/wiki/%E4%B8%89%E5%9C%8B%E5%BF%97/%E5%8D%B719|출처]]] 위의 내용에 이어서 <진수전>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壽父為馬謖參軍,謖為諸葛亮所誅,壽父亦坐被髡,諸葛瞻又輕壽。壽為亮立傳,謂亮將略非長,無應敵之才;言瞻惟工書,名過其實。議者以此少之。 >(진수의 부친이 [[마속]]의 참군(參軍)이었는데, 마속이 제갈량에게 처형당하고 진수의 부친 또한 연좌되어 곤형[* 髡刑 : 고대에 죄인의 머리카락 전부 또는 일부분을 밀어버리는 형벌.]을 당했으며,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 또한 진수를 경시했다. 진수가 <제갈량전>을 쓰며 평하길, 제갈량은 용병술에는 뛰어나지 않았으니, 적과 맞서는 데 재능이 없었다고 하였다. 또한 제갈첨은 글씨나 잘 썼을 뿐인데, 실상에 비해 명성이 지나치다고 했다. 이러한 (개인적 원한에 따른) 평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 - 《진서(晉書)》권 82·<진수전(陳壽傳)>열전 제 52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9%89%E6%9B%B8/%E5%8D%B7082|출처]] 《진서》에 나오는 정의 형제와 제갈 부자의 얘기는 각각 지인소설(志人小說)인 《어림(語林)》과 《[[세설신어]]》가 출전(出典)이다. 다만, 아래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이 《진서》의 기록들, 특히 정씨 일족에 대한 기록들은 사실 《진서》 가 《정사 삼국지》 이상으로 비판과 논란의 여지가 충분한 기록을 실은 증거가 된다. [[정사 삼국지]] 문서에서 '저자 본인에 관한 문제' 항목도 참조하자. 그 외 조씨나 사마씨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평가하고 불리한 서술은 은근히 넣지 않기도 했다. 일례로 <동탁전>에서는 동탁의 양성 학살을 두고 흉역하다고 평가했지만 정작 조조의 경우 서주에서 동탁보다 더 많은 사람을 학살을 저질렀는데도[* 동탁의 경우 양성 하나였지만 조조의 경우 서주 일대 여러 개의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른다.] 일말의 평가도 없다. 그외에도 [[사마소]]의 고귀향공 [[조모(삼국지)|조모]] 시해를 기록하지 않은 것도 유명하지만 당대의 명사이자 많은 인재를 천거하고 인재등용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하후현]]더러 한 평론이 걸작이다.[[http://blog.naver.com/OpenMagazineViewer.nhn?blogId=neight_nesia&logNo=130178087229&categoryNo=7&parentCategoryNo=0&viewDate=|일찍이 그가 조상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거나 훌륭한 인재를 등용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이건 사마씨가 황제가 된 판국이니 스스로 몸을 사린 걸 수도 있고, 혹은 진수가 지은 《삼국지》를 말년에 조정에서 베껴서 보관했는데 이 때 기록이 있었음에도 배제했을 확률도 있다. 진수는 인물을 평할 때 능력만 아니라 행실이나 성격까지 평가 기준점으로 잡아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공을 세웠어도 성격적 결함이 있으면 반드시 깠다. [[관우]], [[장비]], [[반장(삼국지)|반장]], [[위연]], [[법정(삼국지)|법정]], [[곽가]]처럼 유능하지만 성격적으로 두드러진 단점이 있는 인물들도 '''"유능한 건 맞는데 성격이 영 아니야."'''라는 평을 남긴 건 유명하다. 반면에 [[유비]]와 [[제갈량]], [[황충]], [[조운]], [[방통]], [[순욱]]같이 능력과 인품 모두 갖춘 인물은 후하게 평가해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