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소양왕 (문단 편집) === [[킹덤(만화)]] === 킹덤에서는 매우 오래 살면서 수많은 전란을 헤쳐나온 괴수같은 군주로 '전신(戰神)'이라 불리며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나오며 약칭인 '소왕'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소년과 같은 순수한 꿈을 노년에도 간직하며 진심으로 추구하면서도 이지적이고 자상한 할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나오며 유언도 야심 넘치지만 이면에는 온후함이 묻어나오는 등 부드러운 면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증손자인 영정이 불우한 과거 때문에 날카로운 인상에다 성격도 까칠하고 냉혹, 격정을 동시에 가진 자로 나오는 것과 다른 모습. 소양왕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전쟁에서 꿈을 쫓은 왕의의 발언으로 보아 소양왕 시절의 전쟁은 돈과 금품이 오가지 않는 건전한(?) 전쟁이었나보다. 성교의 반란 당시 왕의는 창문군에게 여불위가 진나라의 권력을 잡은 후 전쟁이 무서울 정도로 시시해졌고 여불위의 이익에 직결되는 일이 많아졌으며 돈과 금품이 오가는 불손한(...) 전쟁이 되어버렸는데 왕의 본인의 마음은 매우 섬세해서(?) 그런 불손한 전쟁에서는 피가 끓어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왕의가 소양왕에게 충심을 바쳤으니 소양왕이 하는 전쟁은 시시하지 않고 뜨겁고 치열하며 돈과 금품이 오가지 않는 매우 건전한(...) 전쟁이었나보다. 3권 과거회상에서 무인들이 소양왕 사후 여씨와 갈씨로 인해 무인들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언급된다. 창문군이 영정은 소양왕을 뛰어넘는다고 말해서 왕의가 그를 직접 확인하려는 계기가 된다. 왕의의 회상에서 가면을 쓴 노인으로 잠깐 등장, 평생 중화통일이라는 야망을 꿈꾸며 전장에서 싸워온 자로 자신의 천명이 다했음을 직감한 듯 왕의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의 꿈을 이을 왕이 나타날지도 모르니 실력을 갈고닦는 것을 잊지 말라고 충고해준다. 이때 자신이 20년만 더 살 수 있었다면 꿈을 이뤘을 것이라고 하는데, 당시 광경은 창문군도 지켜보고 있었다. 왕의의 회상으로는 중화에 대한 애정과 꿈을 향하는 소년과도 같은 불타는 눈을 가졌다고 한다. 반면 증손자인 정(시황제)의 눈은 중화통일로 가는 길을 명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2권 초반 왕제의 반란 당시 왕의와 창문군의 대화에서 소왕을 정(진시황)의 고조부로 잘못 적어놨다. 아마도 오역의 문제일 듯...] 7권 영정의 과거를 다루는 에피소드는 소양왕이 죽고 며칠 후에 벌어진 일로 당시 궁궐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일이지만 암상인 시카는 여불위도 인정하는 정보력으로 그의 사망과 후계자까지 알아낸 상태였다. 그 말을 들은 동료 암상인은 그 전신(戰神) 영감탱이 드디어 죽었냐면서 놀랐다. 당대의 전설적인 무장 집단인 [[육대장군]]을 두고 있었으며[* 10권에서는 자신과 뜻이 같고 매우 강하면서도 모반의 염려가 없을 정도의 사람들인 [[육대장군]]이 수십만의 병사들을 자율적으로 부리는 것을 특별히 허락해 미쳐날뛰는 용들을 풀어놓은 것처럼 진나라가 중화에 맹위를 떨쳤다고 나온다. 하지만 여불위의 말을 볼 때 몇몇 그렇지 않은 자들은 자신의 카리스마로 수작질을 부리지 못하게 통솔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나라의 삼대천과 위나라의 화룡칠장이라는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 하지만 뉘앙스를 볼 때 소양왕이 시초고 조나라 삼대천과 위나라의 화룡칠장은 육대장군 제도를 따라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조나라의 삼대천, 위나라의 화룡칠장[* 다만 화룡칠장은 창설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내란으로 셋이 죽어버리고 셋은 감옥살이를 하게 되면서 그때 내란에 관여하지 않았던 [[오경(킹덤)|오경]] 한 명만 이름이 남게 되고 싸웠던 자들이나 극히 일부의 무가(武家)만 기억하는 신세가 되었다.]과 함께 한 시대를 대표하면서 중화에 맹위를 떨쳤다. 육대장군과는 다들 친했고 자신이 죽을 당시 살아있던 육대장군은 왕의밖에 없어서 왕의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준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이외에 같은 세대 출신이면서 자질이 동등하다고 평해지는 [[표공(킹덤)|표공]]의 회상에 따르면 그는 늘 변방에서만 싸워서 중앙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자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중앙에 부르려고 했지만 표공은 육대장군들은 다 전장에 야망을 가지고 싸우던 자들이지만 자신에게 있어 전장은 야망과는 상관없이 그저 삶 자체일 뿐이었기에 거절했다고 한다. 16권에서 서녀 규와 관련된 회상에 나오는데 가면을 쓰지 않았으며 군장에다 왼쪽 눈에 베인 것마냥 흉터가 있는 백발 노인으로 등장한다. [* 규를 육대장군으로 임명할 때는 군주로서의 관복이었다.] 소양왕은 늘 밖으로 나가다 보니 후궁은 완전 무법지대였다고 한 걸 볼 때 그런 쪽의 관리는 안 한 것 같지만, 후궁은 태후를 중심으로 한 여자들의 영역권이라 별개의 세력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마냥 그의 책임은 아니다. 규의 어머니는 한미한 무가 출신이었지만 한때 총애했던 아름다운 여인으로 아이가 태어나자 지킬 수 없다 판단해 규를 몰래 왕의의 집안에다 반출하고 얼마 후 증거인멸을 저질러서 죽었다. 이 사건을 소양왕도 규 본인도 전혀 몰랐고 왕의만 알고 있었다 창문군에게 몰래 귀뜸했다. 어느 성의 공방전에서 젊은 시절의 왕의가 승리하자 왕의를 치하할 당시 여병사 규를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대면했을 때 무언가를 느끼고 나이를 물어본 뒤(당시 16살) 정체를 짐작하고 왕의를 추궁해서 진상을 알아낸다. 하지만 규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원래 후궁에 아이를 무단으로 내보내는 건 금지기 때문에 알려지면 관계자 전원을 처벌해야 한다. 그래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규는 이때부터 가면을 쓰면서 외모와 성별을 비롯한 모든 것을 불미에 부쳤다. 그 때문에 진의 고위층도 규의 본모습을 알지 못했으며 지나칠 정도로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아서 후대 왕이었던 영정도 의아하다고 여겼을 정도.] 간접적으로 지원해줬다고. 여담으로 처음 규와 만났을 때 이미 백발에 50대~60대 모습이었던 걸 볼 때 규가 생겼을 때 나이가 제법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규는 아버지를 닮아서 매우 천재적이었는데 그 때문에 왕의는 왕께 많은 자식이 있지만 가장 전신(戰神)의 피를 많이 물려받았다고 평했다. 소양왕은 유언으로 왕의에게 군주가 중화를 통일했을 때 해야 할 여러 당부를 전하고 왕의가 인정하는 군주에게만 전하라고 말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후손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상관없었다는 모양. 왕의는 영정을 인정한 뒤 함께 중화통일을 하자며 유언을 전했고, 창문군에게 슬슬 소양왕의 육대장군이었던 시절의 자신과 작별하고 새로운 길을 나아가려고 했지만 이목에 의해 실패한다. 그래도 모든 것과 타협하고 웃으며 떠났고, 왕의의 죽음에 자신들과 그 시대를 더럽히는 거라며 왕의에게 분노를 느꼈던 염파도 이신을 통해 왕의의 마지막을 알자 허무해하면서 납득한다. 킹덤에서는 제나라 이후 본래 소양왕 시절에 있었던 진나라를 대상으로 한 합종군 전이 없었고 [[이목(킹덤)|이목]]에 의해 본편에서 처음 된 것으로 나온다.[* 소양왕 시절에는 조 삼대천이나 위 화룡칠장, 연 악의와 극신 등 걸출한 무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던 시대라서 서로 나라간의 균형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합종군까지는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합종군과의 전투와, 위,조 연합군, 한,위 연합군과의 전투가 모두 있었다. [[진시황]] 즉위 직전에는 [[신릉군]]이 이끄는 합종군이 [[몽오]]의 진나라군을 박살내는 바람에, 진군이 [[함곡관]]까지 밀리기도 했다.]다만 제를 상대로 한 당시 시점에서 40년~50년 전 최초의 합종군전에서는 본인도 그 일원으로서 싸웠다고 한다. 최 공방전 당시 영정이 최 주민들의 전의를 고양시킬 때 창문군은 영정에 대해 전신(戰神) 소양왕을 뛰어넘는다고 평하며 이신에게 그 정도의 활약은 소양왕조차 불가능한 것으로 보통 군주가 아니라고 말했다. 소양왕을 두 번 엿먹인 [[인상여]]는 그와 두 번 만난 적이 있으며 어린아이와 같은 눈동자를 가진 순수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왕이 그리 순수해서 그런지 부하들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순수한 자들이라고. 강한 건 맞지만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비원에 닿을 수 없다고 한다. 인상여가 왕의에게 한 말에 왕의가 한 반응을 보면 왕의도 자신들보다 더 이후의 시대에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없는 짓을 하는 건 아니고, 사람은 마음을 이어나가면서 그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