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먼현 (문단 편집) == 상세 == [[서해 5도]]처럼 타이완섬과는 멀지만 대륙과는 매우 가깝다. 대륙의 [[샤먼(도시)|샤먼]]시와는 불과 '''10km'''. 눈으로 보인다. 가령 홍콩 발 샤먼 행 비행기를 타고 갔을 때, 진먼 상공을 경유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영토가 바뀜을 기내 전자기기로 알 수 있다. 국공내전 전에는 샤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꽤 있었고 샤먼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타이완 섬]]과는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진먼 포격전|실제로 인민해방군과 중화민국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진먼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0년에서 3800년 사이로 추정된다. 고대에는 오주(浯洲)로 불렸으며, 한족의 정착에 대한 기록은 [[동진]] 시기에 중원 지역에서 피난 온 6개 성씨로 구성된 이주민이 정착한 기록이 최초이다. 이후 당 [[덕종(당)|덕종]] 대인 [[803년]]에 진연(陳淵)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척되었으며, [[명나라]]가 들어선 후 [[1387년]]에 [[홍무제]]의 명으로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 시설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명칭인 진먼으로 개칭되었다. 명청교체기에는 [[정성공]]이 이끄는 명나라 부흥군의 주요 거점이 되었으며, 명나라 부흥운동에 가담한 명 황족인 [[주이해]]가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청대에는 [[푸젠성]] 퉁안(同安)현[* 현 [[샤먼시]] [[퉁안구]], 본래 이 현이 지금의 샤먼 중심지 일대까지 관할하던 현이었는데, 여기서 샤먼시와 쓰밍현이 분리된 후 지금은 두 현이 모두 샤먼시에 합병되어 샤먼시 [[쓰밍구]]와 퉁안구가 되었다.]에 속하였으며, [[1913년]]에 신설된 푸젠성 쓰밍(思明)현의 관할 지역이 되었다가 [[1915년]]에 쓰밍현에서 진먼섬과 그 부속 도서가 다시 분리되어 정식으로 진먼현이 신설되었다. 중일전쟁 개전 직후인 1937년 10월 26일에는 진먼을 샤먼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삼으려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점령되어 8년간 일본군의 점령하에 놓였다가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중화민국의 통치가 회복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 막바지 당시 밀리고 밀리던 [[중국 국민당]] 측의 최후의 방어선이 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 말기에 [[중국 공산당]] 측에서 상륙대를 밀어넣었다가 [[1949년]] [[10월 24일]]부터 [[10월 26일]] 사이에 벌어진 고령두(古寧頭) 전투에서 죽음을 각오한 중화민국 국군이 필사적으로 저항, 인민해방군을 이겨 대륙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당시 진먼에 정박 중이던 전차상륙함 중룽(中榮)함이 대만에서 운반한 설탕을 진먼의 땅콩기름과 교환하는 '''밀수를 하려고'''(...) 기상악화를 핑계로 출항을 미루고 정박해있다 우연히 진먼에 상륙하려던 인민해방군 상륙대를 발견하고 공격해 격퇴했다. 고령두전투의 승리로 [[중화민국]] 측의 지배가 확고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원래 진먼현 관할 지역 중 다덩(大嶝), 샤오덩(小嶝), 자오위(角嶼), 3개 섬과 그 주변 [[암초]]들로 이루어진 다덩 군도는 인민해방군이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현재 이 지역은 [[샤먼시]] [[샹안구]] 관할이다. 이 지역은 대만과 같이 [[계엄령]]이 내려졌지만 민정 체제였던 [[타이완 섬]]의 다른 지역과 달리 직접 군정이 실시되었다. [[인민해방군]]은 1958년 다시 진먼 섬에 47만 발에 이르는 포탄을 쏟아 부으면서 [[진먼 포격전]]이 발발하게 된다. 이때에는 [[인민해방군 공군]]과 [[대만 공군|중화민국 공군]]의 공중전까지 벌어졌는데, 중화민국 공군의 [[F-86]] [[전투기]]들이 [[사이드와인더]]를 달고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다시 진먼 현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인민해방군의 포격은 [[1978년]]까지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서, 그때까지 대치하게 된다. 진먼 섬과 우추 향은 [[롄장|마쭈 열도]]와 함께 [[대만]] 정부가 죽음을 각오하고 지켜야 하는 곳이 되었으며, 이 지역의 [[계엄령]]은 [[타이완 섬]] 다른 지역과 달리 [[1992년]]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다 1992년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삼통정책이 시행되었고, 1993년에는 현장 선거를 시행해 군정에서 민정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조금씩 대륙과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언어는 대만 섬과 마찬가지로 [[민남어]]를 사용한다. 때문에 대만 내 언어 사용 현황을 다룬 자료에서는 대개 [[대만어]]가 널리 쓰이는 지역으로 표시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