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직봉풍전쟁 (문단 편집) === 남구대전 === 전술한 바와 같이 국민군 1군 산하의 장지강 부대가 펑위샹의 명령을 무시하고 톈진을 공격하여 리징린 군대를 축출하였고 손악의 3군도 바오딩을 공격해 리징린을 몰아내었다. 다급해진 리징린은 [[장쭝창]]에게 직예성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장쭝창은 직노연군을 조직, 직노연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여 저옥박을 부사령관으로, 리징린을 참모장에 임명하고 직예성으로 진입하였다. 한편 궈쑹링의 잔여세력을 수습한 위익삼은 1926년 1월 3일, 펑위샹에게 투항했고 펑위샹은 이들을 국민군 4군으로 조직하고 위익삼을 국민군 4군 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장쭤린은 이 조치에 격분하였고 국민군 4군에 대한 토벌을 선언했다. 또한 펑위샹은 [[중국국민당]]에 파견된 소련 고문 [[미하일 보로딘]]과 접촉하여 소련으로부터 30~40명의 군사 고문단을 받고 소련의 군사지원을 받았다. 한편 [[우페이푸]]는 펑위샹이 자신을 배반한 것에 악감정을 품고 있었으며 반봉사건에 펑위샹이 개입하여 장쭤린까지 배신하려한 것에 대해 공분하며 장쭤린에게 동조하는 전문을 보냈다. >"이전에 펑위샹이 배반하여 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현재 궈쑹링이 배반하여 귀하의 마음이 매우 아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평생에 가장 통탄스러운 것은 이렇게 변절하는 소인배들입니다. 현재 귀하를 돕고 싶습니다." 또한 펑위샹이 소련과 접촉하자 그를 적화장군으로 비난하며 중국의 적화를 막기 위해서 북양군벌이 연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에 장쭤린과 우페이푸는 중국반적대동맹을 결성, 연합을 타진하였다. 우선 [[양위팅]]이 다롄에서 우페이푸의 대표 장백리와 회담을 가졌으며 1926년 1월 10일, 한커우에서 [[장징후이]]와 장지담이 직봉합작을 협의했다. 회의 결과, 봉천군벌은 우페이푸의 장강일대 기반을 옹호하고 우페이푸는 장쭤린이 화북에서 국민군을 섬멸하는 것에 대해 상호 승인하였다. 한편 펑위샹, 장쭤린에게 포위되어 있던 옌시산도 펑위샹 세력의 약화를 위해서 장쭤린에게 합세함으로 봉풍전쟁은 직봉풍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펑위샹은 전쟁 종식과 하야를 선전하고 소련으로 도주하였지만 이미 봉천과 직예 군벌 모두 그 정도 가지고 펑위샹을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우페이푸는 2월 2일, 소요남, [[치셰위안]]과 연명으로 펑위샹 토벌을 선언, 산동으로 출병시키려던 늑운악의 3개 사단 병력을 하남성으로 회군시키고 하남성 신양을 공격하고 있던 비적 영걸과 합세시켜 국민군 2군 11사단 장세걸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2월 6일, 국민군이 이에 대응하여 국민군 1군 장지강, 국민군 3군 손악의 명의로 우페이푸 토벌의 통전을 보냈다. 48일 간의 공성 끝에 신양은 우페이푸에게 함락되고 장세걸은 포로가 되었다. 늑운악은 장세걸의 부하들을 재편성하여 3개 사단, 21개 여단, 12만명의 공격군을 확보하여 스자좡, 바오딩, 대명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베이징으로 진군했다. 장쭤린도 호응하여 난현, 톈진, 통현을 점령하고 베이징을 포위하였다. 한편 국민군은 3월 18일의 대고구 사건을 구실로 [[돤치루이]]를 핍박하여 집정에서 내쫓아버렸다. 4월 1일, 장쭝창이 전적 총지휘에 임명됨으로 봉군의 베이징 공격 준비가 완료되었다. 여기에 봉군은 공군을 동원, 베이징을 폭격하여 국민군을 크게 동요시켰다. 이 상황에서 위익삼은 3월, 국민군 4군에서 정의군으로 개칭하여 바오딩을 떠나 고비점으로 철수해버렸고 4월 1일 혁내소를 파견하여 한커우에서 우페이푸를 만나 우페이푸에 대한 충성을 선언하였다. 이에 우페이푸는 위익삼을 토적연합군 3로군 사령관에 임명하였다. 4월 6일, 봉천, 직예, 산서의 연합군이 베이징을 포위하여 총공격을 감행했다. 펑위샹은 중과부적의 전세를 반전시킬 수 없다고 여겨 병력을 수원성 오원으로 퇴각시키고 녹종린을 동로군 사령관에 임명하여 최고 정예부대인 국민군 1군을 지휘하게 했다. 녹종린은 주력부대가 수원으로 퇴각하는 것을 엄호하는 한편 거용관에서 적의 추격을 저지하라는 작전명령을 하달받았다. 이후 우페이푸가 베이징에 입성, [[차오쿤]]의 하야를 무효화하고 왕회경을 베이징 위수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봉천군은 남구에 병력을 집결하고 유익비, 궁부괴 부대를 동원하여 거용관을 공격했으나 녹종린의 단단한 방어로 인하여 사상자만 내고 성과를 보지 못했다. 공격을 지휘하던 장쭝창은 장쭤린에게 협공을 요청했으나 여유병력이 없어서 불가능했다. 이에 장쭝창은 [[쑨뎬잉]]에게 남구의 펑위샹 부대를 타격하라고 지시했고 쑨뎬잉은 산동성에서 철로를 타고 급히 이동, 남구의 펑위샹 부대를 강타하여 완전히 붕괴시켰다. 장쭤린은 쑨뎬잉을 크게 칭찬하며 그를 14군 군장으로 승진시키고 다시 산동성 제녕으로 이동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