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잡대/외국 (문단 편집) == 현황 == 전체적으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상당수 [[유럽]] 국가들처럼 [[대학 평준화]]로 인해 대학 서열 의식이 약화된 곳도 있지만 [[학벌주의]]의 본고장 [[영국]]처럼 우리나라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모두 그렇지 않지만, 외국 지잡대들은 대부분 역사가 짧은 사립[* 공립, 국립은 나라에서 운영되는 거라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대학교이고 투자를 못 받으니 유학원을 통해 낚은 어리바리한 유학생 학비를 돈줄로 장사를 해먹는다. 자국 사회의 눈치를 봐야하고 장학금도 주기까지 해야 하는 내국인 학생들과 달리 유학생에게서는 학비를 몇 배는 받아 낼 수 있고 또 현금으로만 받기 때문에 자금이 부족한 외국 지잡대들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혹시 다니고 있는 대학에 실력 없고 학업능력이 처참한 유학생들로 가득 차 있으면 학교 수준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런 학교가 몰린 나라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필리핀]]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체계적인 교육제도가 정착하기 전에는 [[명문대|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수의 대학]]들이 지금의 [[지잡대]] 마냥 수업료만 꼬박꼬박 잘 납부하면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옛날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입학 시험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현대의 [[지잡대]]마냥 돈만 줘도 거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유이하게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입시가 있었던 곳은 [[한국]]과 [[중국]]이었는데, 특히 [[조선]] 시대에는 [[과거 제도|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만이 [[성균관]]이나 동네 [[향교]](오늘날의 [[공립대학]]), [[서원]](오늘날의 [[사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이런 곳은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나오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물론 이것으로 정신승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옛날에는 좋지 못한 대학이 있을만큼 교육기관이 많지 않았다. 현재의 위상과 비교했을 때 당시로서는 그렇게까지 높은 대우를 받는 대학이 아니었다는 뜻으로 서술한 것이다. 우선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본래 정치적인 이유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축출당한 교수들이 세운 학교였다. 그런만큼 학교 역사의 극초창기 동안은 옥스퍼드에게 위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버드 대학교]]야 식민 본국인 [[영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미국|식민지]]에 세워진 대학인 만큼, 초창기에는 이미지가 그리 좋을 리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같은 [[백인]]들끼리도 본국 출신이냐 식민지 출신이냐에 따라서 차별도 극심하게 벌어졌기 때문에, 그 유명한 '''하버드'''를 포함해 식민지의 대학을 나온 사람이 본국 소재 대학생들에게 [[지잡대]]라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스페인]]령 식민지들이 이 문제가 제일 극심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식민지 출신의 하급 귀족들은 똑같이 자기 나라의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해도 잘해야 [[대위]]까지 밖에 올라가지 못 했다. 그래서 이런 차별에 분노한 [[백인]]계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봉기하여 [[쿠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에콰도르]]+[[베네수엘라]]의 그란 콜롬비아 등으로 독립하면서 [[스페인]]의 몰락에 크게 일조했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로 [[브라질 제국]]은 [[포르투갈]] 왕실의 피난령으로 독립했으나 소장파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실질적 독립을 이뤘던 이유가 브라질 대학이 포르투갈 대학보다 더 낮은 대우를 받아서가 컸다. [[영국]]령 식민지들은 이 정도까지 차별받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차별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역시 나중에 가선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이 영국의 지배를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미국 독립 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열]]이 물질이 아닌, 에너지라는 것을 처음 주장한 [[물리학|물리학자]]인 [[윌리엄 톰슨]]이 모국인 [[영국]]이 아닌 [[독일]]의 [[바이에른 선제후국]]에서 처음 공직에 오른 이유도 이것이다[* 본래 [[윌리엄 톰슨]]은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현재의 [[미국]]) 출신인지라 영국 본국에서는 한동안 출세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신성 로마 제국]]으로 귀화해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의 작위인 럼퍼드 백작 작위도 [[영국]] 왕실이 아닌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하사한 것으로, 뒷날 그가 [[유럽]] 대륙에서 [[물리학|물리학자]]이자 군사고문관으로 출세한 뒤에야 영국 측에서 뒤늦게 그에게 ~~고작~~ [[기사]] [[뒷북|작위를 수여하고 중용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대학이 별로 많지가 않아서 일단 어디든 들어가서 학점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대우를 받을 수는 있었다. 그런 만큼 당시 대학들도 바보가 아니었던지라, 학점 관리를 굉장히 빡세게 해서 위상을 높이고자 했고[* [[유럽]]에 대대적으로 [[대학]]이 세워지던 [[중세]] 시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치안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학생들 중에서도 호신용으로 [[단검]] 등으로 무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학 측의 빡센 학점관리에 분노한 학생이 강의를 듣던 도중에 호신용 칼로 [[교수]]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사실 중세의 대학은 현대의 지잡대 기준으로 봐도 혀를 내두를만큼 막장이었던지라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대놓고 학생끼리 [[결투]]를 벌이 일도 잦았다.], 그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웬만한 서구권 대학들은 대체적으로 졸업이 어려운 편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대학들은 저명한 학자가 세웠거나, 왕실이나 정부의 국책 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역사가 깊은 대학교들의 초기 모습을 오늘날의 [[지잡대]]와는 교육의 질이나 위상 면에서 비교하는 것은 엄청난 실례다. 그래서 현대의 [[지잡대]]와 달리 그 당시 갓 설립된 대학교 교수들의 입지도 엄청났다. 웬만한 학자들이 다들 어느 대학교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것은 이런 역사의 흔적이 남은 것이다. [[대학]]을 자신의 연구를 이어갈 후학들을 키워내는 장소로 이용하다보니, 대학교가 여느 교육기관과는 다르게 연구기관으로서의 성격도 겸하게 된 것이다. 이는 [[중세]] [[유럽]]의 대학들만 이런 게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조선]]의 [[성균관]]이나 [[서원]], [[향교]]도 선배 [[유교|유학자]]들이 후배 유학자들을 양성하고 함께 유교 철학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중동]]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유서깊은 [[대학]]들도 [[이슬람]]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양성하는 역할을 했으며, 심지어 유럽도 고대 시대부터 서원과 정확히 같은 목적으로 운영되던 학당들이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여럿 존재했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리케이온]]이 아주 대표적이며,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도 이름있는 학당을 세우지 않았을 뿐, 자신만의 학파를 창시하여 수많은 [[철학|철학자]]와 정치인들을 양성해냈다.]. [[유대인]] 사회에서도 곳곳에 [[랍비]]들이 교수로 재직하는 [[유대교]] [[신학교]]들이 있어서, 후임 랍비를 양성하고 유대교 신학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삼은 바 있다[* [[탈무드]]에서 허구헌날 학교 설립 타령을 하는 내용이 수두룩하거나, 학교가 없으면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드립을 치는 게 이래서 그렇다. 친[[로마 제국|로마]]파 [[랍비]]인 [[요하난 벤 자카이]]가 [[티베리우스]] 황제와의 평화 협상 때, 다른 건 몰라도 [[유대교]] [[신학교]]만은 부수지말고 냅둘 것을 요구한 것이나, 당시에 로마군에 의해 학살이 자행되는 와중에 한 랍비가 제자들에게 속성으로 랍비 안수 과정을 밟게 한 뒤에 자길 버려두고 도망가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로마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한 일화도 모두 이런 고등교육기관의 중요성을 인지하고있던데서 비롯되었다.]. 당연히 이 시기에는 [[지잡대]]라는 개념이 나올 수가 없었고, 일단 저명한 학자가 세웠거나, 나라 예산으로 설립되어 운영되던 학교라면 그게 어디에 있던 고평가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대학 서열화]] 개념이 나온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인데, 이 시기에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동북아시아]]의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세계의 주요 경제대국들이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뤄내면서, 선진국 국민들 사이에서 대학진학률이 높아지기 시작한게 원인이다. 대략 1960년대 이전에는 대학교는 소수의 학생들만 가는것이었지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해 기업이나 공공기관들마다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고학력자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했고, 이 틈을 타서 대학 졸업장을 얻으려는 이들을 상대로 학위 장사를 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 간의 경제력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연구 시설과 장비, 연구용이나 교육용으로 쓰일 서적을 확보하거나, 학생들 및 교직원들에 대한 복지에 투자할 여력이 달리는 개발도상국의 대학들이 전반적인 역량에서 선진국 대학들에게 크게 뒤쳐지기 시작했다. 당장 [[북한]]만 해도 [[북한의 핵개발|핵개발]]을 목적으로 [[과학]] 부문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으나, [[북한/경제|경제력이 사실상 궤멸된 상태인 북한의 절망적인 상황]]때문에, 당국으로부터 온갖 특혜를 다 받으면서 엘리트 대접받는 연구원들조차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더 나은 상황을 찾아 [[남한]]으로 [[탈북]]하는 지경이다. 그래서 북한이 들인 돈에 비해, 사실상 무기 관련 기술빼고는 북한이 내세울 만한 기술이 전무한 상황이다[* 그나마 [[북한]]의 군사기술 수준도 어디까지나 다른 [[후진국]]들에 비해 좋은 수준이고, '''[[대한민국|남한]]''',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같은 [[선진국]]의 군사기술 수준과 비교하면 깔끔하게 발리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오늘날에 [[선진국]], [[후진국]] 막론하고 학위 장사하는 [[지잡대]]들이 늘어난 이유가 이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