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린성 (문단 편집) == 역사 == 지금은 [[중국]]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 이름이 [[만주어]] 어원인데서도 알 수 있듯 역사적으로 [[한족]]의 통치 하에 있었던 시기보다는 [[한국사]] 왕조, [[퉁구스]]계 왕조, [[몽골]]계 [[유목제국]]의 지배를 받은 기간이 길었다. 옆 동네 랴오닝은 그래도 중국이 직접 통치한 시기도 꽤 있었지만, 지린은 지도상으로 중국 영향권 내에 표시되어 있었던 몇몇 시기에도 워낙 춥고 산세가 험하고, 툭하면 유목민족들에게 털리는지라 간접적 통치가 대부분이었고 관리도 매우 힘든 곳이었다. 고대에는 [[고조선]], [[고구려]], [[부여]], [[발해]]의 활동무대였으며 발해 멸망 후 [[거란]], [[여진족|여진]], [[몽골]] 등이 발흥해 이 곳을 통치했고 [[청나라]] 또한 이 곳에서 발흥하였다. 하지만 워낙 관리가 힘든 곳이라, 이 지역을 차지한 왕조들은 중원을 지배하고 나면 항상 이곳을 버리다시피 해왔다. [[청나라]]의 경우 1644년 중원 정복 이후, 중원 지역에 대해서는 '행성제(行省制)'를 적용했지만 만주 지역에 대해서는 장군부(將軍府)를 두어 통치하게 하는 '군부제(軍府制)'를 채택했다. 1653년([[순치]] 10) 지금의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寧安市)에 '영고탑앙방장경(寧古塔昻邦章京)'이라는 벼슬을 두었다가, 1662년([[강희]] 1) 이를 '진수영고탑등처장군(鎭守寧古塔等處將軍, 약칭 영고탑장군)'으로 개칭하였다. 1673년(강희 12)에는 지금의 [[지린성]] [[지린시]]에 '길림성(吉林城)'을 쌓고, 길림오랍(吉林烏拉, 지린우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이 일대를 지린성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1676년(강희 15) 장군의 주둔지를 지금의 지린성 지린시로 옮기고 1757년([[건륭]] 22) 군부의 명칭을 '진수길림오랍등처장군(鎭守吉林烏拉等處將軍, 약칭 길림장군)'으로 고쳤는데, 이 길림장군이라는 군부가 이후 지린성의 전신이 되며, 공식적으로는 [[신해혁명]] 직후인 1912년 [[길림성]]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러나 1740년(건륭 5) "여긴 [[만주족|우리]]가 태동한 땅이니 신성한 곳이라 아무도 발 들이지 말라."하고 '유민귀환령(流民歸還令)'을 내려 [[산해관]] 동쪽 지역에 대대적인 봉금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현지에 살던 [[만주족]]들은 대다수가 이미 [[순치제]]의 중원 정복 이후에 중국 본토로 이주해버렸기 때문에 정작 이 지역에 남아 있던 만주족들은 매우 적었고, 그 뒤 극심한 가뭄 및 흉년 등으로 생계에 위협을 받은 [[화북]] 지역의 [[한족]] 농민들이 [[틈관동|대량으로 유입해 들어오는 것도]] 저지할 수 없었기에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어 분명 실효성에 문제가 있었던 정책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 봉금정책은 1803년([[가경]] 8) 폐지되었고, 1878년에는 한족에 대한 가족 동반 이민을 허용하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래서 100여년 사이에 한족들의 대대적인 이주로 이곳의 다수민족은 한족이 되었다. 어쨌든 이 봉금정책으로 지린성 남부 지역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게 되어 [[비무장지대]] 같이 완전 야생지역이 되다 보니, [[조선]]에서 기반이 없던 일부 조선인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청나라 영토로 넘어가서 마을을 만들기도 하고, 거기서 쑥쑥 자란 [[산삼]] 같은 작물들을 채집하기 위해서 등, [[조선]] 사람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이 곳으로 많이 넘어오게 된다. 이것이 중국[[조선족]]의 시초이며, '''[[간도]] 떡밥'''의 시작이었다. 공식적으로 정한 국경선을 맘대로 넘어가는 문제라 조선에서도 불법으로 간주해 처벌했으나, [[북한]] [[탈북자]]마냥 적극적으로 발본색원하려는 의지는 없었다. 이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청 양국 간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데,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청 멸망 이후에는 만주 지역에 한족 군벌들이 성장하였고, 당초에는 길림독군 [[멍언위안]]의 지배를 받았으나 1919년 동삼성 순열사 [[장작림]]이 이 지역을 장악했다. 이후 10년 넘게 [[봉천군벌]]의 지배를 받았으나 1931년 [[만주사변]]이 발생, [[일본 제국]]이 점령했고 [[선통제]]를 옹립하여 [[만주국]]을 수립하였다. 이 만주국의 수도가 신경특별시(新京特別市)라는 곳이었는데, 바로 지금의 [[창춘]]이다. 1930년대 중국 공산당과 그 휘하에 있던 독립군들이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곳이기도 하며, 역으로 일본에 부역한 친일파들과 일본군이 토벌전을 벌였다. 1945년 소련군이 일본군을 무찌른 곳이기도 하며, 일본 패망 후 [[소련군]]이 잠시 이 곳을 접수했다가 얼마 후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 하에 들어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