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둥방공자치정부 (문단 편집) == 역사 == [[당고정전협정]] 이후 일본은 [[산해관]] 이남의 비무장지대를 확보하였다. 일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비무장 지대 내의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제거하려 애썼는데 [[화북분리공작]]을 통해 비무장지대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1935년 5월 29일 발생한 [[하북 사건]]을 [[남의사]]의 소행으로 규정하며 베이핑 군분회 대리위원장 [[허잉친]]에게 새로운 조약의 채결을 요구하고 나섰고, 그 결과 [[하매 협정]]이 채결되었다. 일본은 화북 분리를 위해 [[국민혁명]]으로 몰락한 군벌 [[쑨촨팡]]을 포섭하려 했으나 쑨촨팡이 기자회견을 통해 거부의 뜻을 밝혔으며 쑨촨팡이 [[스젠차오]]에게 암살되면서 유야무야되었다. 문제의 [[하매 협정]]이나 [[진토 협정]] 모두 정식 협정이 아니라 의견을 주고받은 것에 불과했지만 일본은 이를 정식 협정인양 흔들어대며 중국을 연일 압박하여 [[쑹저위안]], [[한푸쥐]], [[옌시산]], 상진 등 화북의 유력인사들에게 자치선언을 강요했다. 하지만 이들이 거부하자 일본은 한간 [[인루겅]]을 포섭하여 1935년 11월 25일 [[기동사변]]을 일으켜 기동방공자치위원회를 조직했다. 이에 따라 현지의 비무장지대 유지군은 자치정부의 군대로 전향되었으며, 자치정부는 일본과 경제적, 군사적 협약을 채결하기에 이른다. 국민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찰정무위원회를 조직하여 쑹저위안을 위원장으로 임명했고 중국에는 일본의 화북침략에 저항하기 위한 [[12.9 운동]]이 일어났다. 자치정부는 국민당, 공산당에 대한 선전 공작등을 수행하며 일본군의 확실한 괴뢰정부로 자리잡아 갔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군의 오폭으로 기동방공자치정부 보안대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분노한 보안대는 폭동을 일으켜 퉁저우의 일본인과 조선인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고 정무장관 [[인루겅]]을 체포하는 [[퉁저우 사건]]을 일으킨다. 일본은 퉁저우 사건을 국민정부가 사주한 테러로 비난하고 보안대를 진압했으나 이 사건으로 기동방공자치정부는 근간부터 흔들리게 되었고, 정무장관 인루겅도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북지나방면군이 한간 [[왕커민]]을 포섭하여 베이징에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기동방공자치정부도 임시정부 합류가 결정되었고 이에 따라 소멸되었다.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ast_Hebei_Autonomous_Council_Building.jpg|width=100%]]}}}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ast_Hebei_Autonomous_Government_Building.jpg|width=100%]]}}} || || 지둥방공자치정부청사 || 지둥정부변공청 건물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