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증산도 (문단 편집) === 증산도의 성장과 후계구도 확립 === 안세찬이 20여 년 침묵을 깨고 70년대 중반에 다시 종교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에게는 장성한 자식들이 여럿 있었다. 안세찬은 슬하에 7남 2녀를 두었는데 특히 3남 안중건, 4남 안병섭, 5남 안정주가 아버지를 도와 교단 발전에 힘썼다. 안중건은 교리 기본서 ≪증산교의 진리≫'[* 교명을 바꾼 뒤 책 이름도 증산'도'의 진리로 바꿨다.]와 ≪이것이 개벽이다≫를 집필해 증산도 교리 및 사상을 정립했다. [[한양대학교]] 학생이던 4남 안병섭은 대학가에서 개척포교에 주력했다. 1984년에 소설 ≪[[단(소설)|단]]≫이 출판되어 세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88년에는 [[전두환]] 군사정권이 종식되었다. 80년대의 이런 사회상 속에서 민족주의와 동양의 전통을 찾는 분위기가 강해져서, 이에 힘입어 대학생들이 증산도에 입교하였다. [[http://www.jsd-renewal.com/board/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3739&page=216|참고]] 특히 동양철학과 밀접한 증산도의 교리 특성상[* 증산도에서도 한의학의 필수인 음양오행설을 가르친다. 또한 [[강일순]]은 염제[[신농]]씨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여러 번 언급했는데, 한의학과 중국 의학에서도 염제신농씨를 의약의 시조로 본다.] 상당수 한의대생[* 당시 한의대생의 위상은 의대생 못지 않았다.]들이 입교했는데, 이들이 증산도의 토대를 놓았고 현재도 증산도의 주축으로 남았다.[* 80년대의 이런 민족주의와 동양/우리나라의 종교적 전통을 찾는 분위기에 증산도만 덕을 보지는 않았다. 무술계도 전통무술 드립을 쳤고, 자칭 '민족종교'들도 덕을 보았다.] 1992년에는 신앙대상인 [[강일순]]과 고판례의 행적을 모아 ≪도전≫이란 이름으로 책을 엮어 출판하였다. 증산도가 성장한 또다른 계기가 1998년 [[정주영]]의 소떼 방북 사건이었다. 강일순은 “천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이 지나고 또 총각판이 지난 후에 상씨름[* 이 상씨름론은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강대국의 각축장이라는 소리다.]이 붙나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느니라.”[* 웹에서 이 문구를 검색하면 대부분 증산도 ≪도전≫이 나오지만, 최초출처는 ≪용화전경≫이다. 도전은 용화전경의 이 부분을 거의 그대로 실었다.] 하고 말했다. 잘 알려진 해석에 따르면 애기판과 총각판이 각각 1차, 2차 세계대전이고, [[6.25 전쟁]]이 휴전되고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은 씨름선수가 서로 샅바를 잡고 버티는 형국이며, 마지막 대전쟁이 상씨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씨름판에 소가 나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던 차에 문자 그대로 소가 나가는 사건이 벌어진 것. 증산도 교단 내에서는 이때 개벽이 목전에 닥친 줄 알고 또 한번 포교붐이 일었다. 증산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른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1990년대 초반부터 '신천지'[* 물론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과는 무관]라는 이름으로 전산망을 갖추고 PC통신을 운영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위성방송시스템을 갖추어 안세찬, 안중건이 진행하는 교육영상을 전국으로 송출하는 등 당시로서는 고급기술을 활용했다. 위에 링크한 동영상의 [[https://youtu.be/9b0F8JaD2uU?t=15m44s|여기]]서 약 10초 가량, [[https://youtu.be/9b0F8JaD2uU?t=16m35s|여기]]서 10초 가량 참조. [[제3천년기|뉴밀레니엄]]이 다가올 즈음 안병섭과 안정주는 조직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안중건이 아버지와 함께 실질적인 교주이자 지도자로서 자리잡았다. 안세찬-안중건 부자의 2인 체제 하에서 증산도는 2002년 교단 본부 건물인 태을궁(증산도 교육문화회관)을 완공했고 2003년에는 ≪도전≫ 개정판을 출간했으며, 2007년에는 [[상생방송|STB상생방송]]을 개국하는 등 최대의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갔는데도 개벽의 전조라 강조했던 소떼 방북 이후 개벽이 오지 않아 성장세가 꺾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