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증기기관 (문단 편집) === 산업 혁명 이전: ~ 1776 === 사실 고대 문명 때부터 끓는 물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방식은 많이 구상 되어왔고, 일부 구현된 것도 있었다. [[파일:external/montaraventures.com/heroaeolipile.jpg]]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헤론]]이 발명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증기기관인 '아에올리스의 공(Aeolipile)'은''' 물그릇에 있는 물을 끓이면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 분출되는 증기에 의해 회전하는 구형 장치였는데 이걸 동력으로 쓸 만큼의 운동에너지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인류 최초의 증기기관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전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도록 설계된 증기기관 같은 것도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이 아닌 특수한 장소에만 사용되었다. [[파일:external/www.adoorwin.com/20111017165337118.jpg]] 헤론이 만든 알렉산드리아의 신전 자동문 메커니즘이다. 신전의 입구에 있는 성화에 불을 붙이면 증기기관이 가동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식이었다.[* 다만 이 자동문에서 수증기는 일절 발생하지 않는다. 성화의 열로 공기가 팽창해 큰 물통의 물을 도르래에 연결된 통으로 밀어내는 식으로, 증기기관이라고 하기에는 비교적 단순한 장난감이다.] 다만 이러한 헤론의 발명품들은 신기하고 비싼 장난감 수준이었지 산업화 시대의 증기기관처럼 상업용 수준의 경제성에 미치지 못했다. 혹자들은 노예가 더 싸서 사용되지 않았다고 설명을 하나,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애초에 헤론의 증기기관은 구조적으로도 충분한 힘을 내지 못하는 정말로 장난감 수준인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와트 직전의 증기기관인 뉴커먼 기관조차 석탄을 잡아먹는 양이 워낙 많아서 광산이 적자가 날 지경이었다고 하는데, 그 정도 힘조차 내지 못하는 헤론의 기관들이 어딘가에 사용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대인들도 차라리 물레방아나 풍차를 사용했지, 헤론의 저것들이 더 쓸모있는 무언가로 사용될 것이라고 상상은 못했다. 물론 신전에서야 사람이 손도 대지 않는데 문이 열리니 '우와 신기하다'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노릴 수는 있었겠지만. 이 정도의 기술이 일상에서 사용되는 걸 기대하기는 무리였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600년이 지난 17세기 유럽에서도 원시적인 방식의 간단한 증기 기관이 등장했다가 1663년 제 2대 우스터 후작, 에드워드 서머셋이 개발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공업용 증기기관이 등장한다. 후작은 이걸로 광산채굴업을 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기도 전에 사망한지라 무산되었고, 이후 1698년 토마스 세이버리라는 자가 우스터 후작의 증기기관을 개량한 광산채굴용 증기기관을 만들었다.1679년 [[프랑스]]의 드니 파팽도 비슷한 장치로 [[압력솥|요리기구]]를 만들었다. 1769년 프랑스의 니콜라 퀴뇨가 화포를 견인할 용도의 [[증기 자동차]]를 처음 개발했지만 시험용으로만 제작했을 뿐 실용화하진 못하였다. 퀴뇨가 만든 이 증기기관 자동차는 최초의 동력기관 자동차로 꼽힌다. 참고로 이 자동차는 최초의 '[[교통사고]]'도 일으켰다. [[브레이크]]가 없어서 시험 운행을 하던 도중 멈추지 못하고 집 담벼락을 들이박고 파손되었다. 이후 퀴뇨는 "위험한 기계로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이유로 한동안 감옥 신세를 져야 했다.[[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19970120/7226432/1|자세한 얘기는 해당 기사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