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증국번 (문단 편집) == 여담 == [[태평천국]]의 공격으로부터 청나라를 구해낸 [[명장]]이고 대국을 보는 안목이나 전략적 능력에서 당대 중국 제일의 군략가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직접 전투를 지휘하면 반드시 진다는 희한한 [[징크스]]를 가진 인물이다. 전투를 지휘할 때의 상대가 태평천국을 대표하는 명장 [[석달개]]나 [[이수성(태평천국)|이수성]]이었다보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징크스는 본인도 대단히 신경쓰였는지 [[태평천국의 난]] 최후의 전투라고 할 수 있는 남경 공략전에는 자신이 지휘를 맡지 않고 셋째 남동생 증국전(曾國荃)이 총지휘를 맡게 된다. 증국번과 그의 동생 증국전, 그리고 [[후난 성|호남]]인으로 주축이 된 상군(湘軍)은 반란 진압 후에 가담여부를 불문하고 현지 주민을 처형하는 청나라의 전통에 근거하여, [[태평천국의 난]] 진압 후 '''포로'''[* 태평천국군도 포함되었지만 실제로는 상당수가 양민들]들을 모두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수는 20~30만에 달한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태평천국의 수도 천경의 인구가 100만이었는데, 전란 이후 인구 조사에서 50만으로 줄어든 것에 근거.], 그리하여 현재도 남경의 호남성 출신에 대한 인식은 100년후 비슷한 규모의 학살을 저지른 [[일본 제국|일본]]만큼이나 나쁘다. [[증자(인물)|증자]]의 70대손이다. 차남 증기택(曾紀澤[*병음 Céngjìzé, 쩡지저], 1839 ~ 1890)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청나라의 고위 외교관으로 일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의 공사를 역임하였고, [[야쿱 벡]]의 난의 와중에서 러시아와의 '''일리 조약'''을 개정하여 잃었던 영토를 조금 찾아오기도 했다. 증기택은 [[불평등조약]]의 개선에 힘썼지만 이 당시의 청나라는 이미 서양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전속 요리사가 은퇴하면서 후임 요리사에게 "매운 고춧가루만 뿌리면 어떤 음식이든 좋아하시니 고춧가루만 준비하면 된다."고 당부했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 공자의 식탁, 장징 저, 박해순 역, 뿌리와이파리][* 호남성 사람들의 특징이다. 동향인인 [[마오쩌둥]]도 매끼니 식탁에 고추를 놓을 정도로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 [[분류:청나라의 군인]][[분류:청나라의 정치인]][[분류:1811년 출생]][[분류:1872년 사망]][[분류:샹탄시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