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즈이카쿠 (문단 편집) === 이후의 즈이카쿠 ===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군은 최강의 장갑 항공모함 [[다이호(항공모함)|다이호]]를 기함으로 세웠고, 쇼카쿠는 기함 자리에서 물러난다.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은 아웃레인지 전법으로 미군을 격파하기로 하고, 압도적인 미군을 막기 위해 경항공모함 3척을 함대 전열에 미끼로 내세운다. 그러나 미군은 잠수함으로 공격을 가해왔고, 쇼카쿠와 다이호가 침몰한다. 이후 미군은 일본군 함재기들을 박살낸 후 총공격을 퍼부었고, 즈이카쿠는 [[호넷(항공모함)#s-2|호넷]] 비행대에게 최초로 피탄당한다.[* 다른 함들에겐 공격받지 않았고 [[호넷(항공모함)#s-2)|호넷]]에게만 대파된다.] 다른 항공모함들도 마찬가지여서 히요는 침몰했고, 준요도 큰 피해를 입었다. 아웃레인지 전법은 실패로 돌아갔고 일본 해군은 퇴각한다.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군 항공부대가 재기불능의 손실을 입은 후, 즈이카쿠는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의 기함으로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한다. 그러나 미군과의 정면대결은 이미 불가능했기에 단순한 미끼가 되어버리는 수모를 겪게 된다. 과달카날부터 함께 작전하던 준요는 함재기 부족으로 출전하지 못했고, 즈이카쿠는 오랫동안 함께 했던 경항공모함 즈이호, 수상기모함을 개조한 치토세와 치요다를 대동한 채 출전한다. 최후의 출격에서 즈이카쿠가 탑재한 함재기는 65대로, 가용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많이 탑재했다고 한다. 오자와 함대는 미 해군 함대를 유인하기 위해 함재기들을 발진시켰고, 이것은 일본 항공모함 부대 최후의 함재기 발진이었다. 다만 이들은 착함을 시도할 기량이 부족했기에 공격을 한 후에는 필리핀의 육상기지로 날아갔다. 그러나 미군은 필리핀에서 날아온 일본기들을 때려잡느라 바빴기에 즈이카쿠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고, 오자와 제독은 미끼 함대에 소속된 항공전함 이세와 휴가를 앞으로 내세워서 미군을 끌어들인다. 두 항공전함을 발견한 미군은 즈이카쿠를 드디어 발견했다. 즈이카쿠를 발견하자마자 홀시는 '''3함대 전부를 투입했다!''' 즈이카쿠가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항공모함 중에서는 말석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은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항공모함을 모조리 없애버릴 생각이었고 마지막 생존함이 바로 즈이카쿠였기에, 박살난 진주만을 본 후 "이 전쟁이 끝나면[* 정확히는 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어라는 언어는 지옥에서나 쓰이는 언어가 될 것이다"라고 발언할 정도로 '''즈이카쿠를 정말정말 죽이고 싶어하는''' [[윌리엄 홀시]] 제독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미군 항공모함 부대에는 승리의 엔터프라이즈가 있고, 더 최신예의 항공모함인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있었으니 즈이카쿠에게는 꿈도 희망도 없었다.[* 다큐멘터리 Battle of 360'에서도 언급되는 사항. 홀시가 즈이카쿠를 원했다고 강조도 해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owering_the_flag_on_Zuikaku.jpg|width=600]] [[파일:attachment/LASTBANZAI.jpg|width=600]] [[레이테 만 해전]]에서, [[퇴함]] 직전 가라앉는 [[광기|즈이카쿠에서 마지막으로 군함기 하강 이후 만세를 외치는 즈이카쿠의 승조원들.]] 결국 즈이카쿠는 렉싱턴과 호넷에게 대여섯발의 폭탄과 어뢰를 얻어맞은 후 선체가 기울며 침몰하고 말았지만 미끼 작전은 성공했다. 즈이카쿠를 잡느라 미군이 북상한 틈을 타서 모든 일본 함대가 레이테 만으로 진격했고, 제일 먼저 16전대가 레이테 섬 돌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른 일본 함대는 모조리 미군에게 막히고 만다. 니시무라 함대는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도 싸우다가 구축함 시구레 1척을 제외하고는 전멸했고, 시마 함대는 니시무라 함대가 괴멸되는 것을 보고 도망갔다. 그리고 일본 해군의 주력인 구리다 함대는 미군의 소규모 함대인 태피 3과 마주쳐서 싸웠지만, 전함 야마토와 나가토가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서 도망가는 추태를 보이며 고전하다가 구리다 턴을 시전하며 퇴각하고 말았다. 게다가 미끼 작전이 성공했다는 무전은 끝내 구리다 제독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즈이카쿠가 침몰하면서까지 성공시켰던 미끼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여담으로, 즈이카쿠와 쇼카쿠가 처음으로 공동격침한 항공모함은 [[렉싱턴급 항공모함|렉싱턴(CV-2)]]과 [[호넷(항공모함)#s-2|호넷(CV-8)]]이었는데, 즈이카쿠를 공동격침한 항공모함 역시 [[에식스급 항공모함/자매함 목록#s-9|렉싱턴(CV-16)]]과 [[호넷(항공모함)#s-3|호넷(CV-12)]]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요크타운급 3번함 호넷은 [[둘리틀 특공대]]가 도쿄에 직접 폭격을 때리러 갈 때 이함했던 항모였기에 일본 해군도 호넷을 잡고 싶어했는데 그걸 즈이카쿠가 해냈고 이후 호넷을 인양해서 일본 내 선전용으로 써먹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진주만을 공격하여 미군이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던 즈이카쿠를 격침한 항공모함이 공교롭게도 렉싱턴(CV-16)과 호넷(CV-12)이었다.[* 다만 즈이카쿠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힌 것은 렉싱턴이고, 즈이카쿠를 침몰시킨 것을 렉싱턴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다수다. 물론 공동격침으로 인정은 가능하다. 야마토 협공에 다수의 항공모함들이 참가했어도 호넷의 전과만 자주 보이는 것도 비슷한 사례.][* 소름끼치게도 이런 계획된 듯한 우연이 2차 세계 대전 내내 자주 발생했다. 진주만을 공격하는데 사용된 어뢰를 제조한 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결국 핵폭격을 받아 괴멸되고 말았는데 이를 두고 전쟁의 화살이 돌고 돌아 시작점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