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화문명부흥운동 (문단 편집) == 배경 == 1966년, 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서 '''[[문화대혁명]]'''이 발발했다. 문화대혁명을 이끌었던 [[홍위병]]은 전통문화를 봉건 시대의 잔재로 규정하고, 중국 대륙 내에 있던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파괴하고 중국 내 수많은 지식인을 능욕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대만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대만(중화민국) 정부, 특히 총통 [[장제스]]는 중국의 전통 문화에 대해 애착이 깊었던 사람인데, 그가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한편 문화대혁명은 중화민국 위주의 통일을 추구하던 당시의 대만 정부로써는 기회이기도 했다. [[중국인]], [[한족]] 위주의 민족국가를 자처하는 당시 대만(중화민국)에서 중화 문화에 대한 보존에 힘쓰는 것은 곧 문화대혁명이 벌어지는 공산 중국을 '전통도 모르는 근본 없는 정권'으로 격하하고 자신들을 중국 대륙의 정통 국가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만 정부는 자신들이 [[중국/문화|중화문명]]의 계승자이며, 이와 동시에 자신들이 중화문명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며 중화문화부흥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쑨커]], [[왕윈우]], [[천리푸]], [[쿵더청]] 등 대만 국민정부의 인사들이 1966년 11월 12일에 장제스에게 건의하는 식으로 시작되었는데, 이 날은 중국의 민족주의자 [[쑨원]]의 탄생 100주년으로 일부러 노린 것이다. 1967년에는 운동을 총괄할 기관으로 [[행정원]] 산하에 '''중화문화 부흥운동 추진위원회(中華文化復興運動推行委員會)'''를 설립, 중화문명의 부흥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장제스는 위원회장을 자신이 겸직할 정도로 이 운동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중화문화부흥운동은 중화 문화에 대한 보존 운동일 뿐만 아니라 대만 국민정부 존립과 [[중국 국민당]]의 집권, 나아가 중국 통일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 운동이기도 했다. 대만이 민주화된 이후 중화문화부흥운동의 추진 기관인 중화문화 부흥운동 추진위원회는 1990년대에 [[대만 내정부|내정부]]의 관리를 받는 [[사단법인]]인 중화문화총회(中華文化總會)라는 이름으로 존속해 있다. 회장은 관례적으로 [[중화민국 총통|총통]]이 겸임한다. 현임 회장도 현임 총통인 [[차이잉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