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중원대전 (문단 편집) === 중원대전의 발발 === >중국의 인민은 너무나도 심한 가난과 곤경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여전히 반란을 꾸미고 있다. 그들은 나라가 망하고 중국 사람의 씨가 마르게 되어서야 멈출 것인가? 아아, 만약 하늘이 돌보신다면, 중국이 그런 혼란의 지속으로 고통을 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이기적이고 편하적이며, 그래서 당과 나라와 인민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한다면, 하늘은 즉각 내게 죽음에 이르는 파멸을 안길 것이다. 나의 인민들에게 최악의 재난이 닥치지 않게 할 따름이다! >---- >1930년 4월 11일, 장제스의 일기. [[1930년]] [[3월 15일]], 펑위샹의 부하 녹종린 등 57명의 장령이 옌시산을 육해공 총사령관으로, 펑위샹과 리쭝런, 장쉐량을 부사령관으로 추대하고 장제스가 불법적으로 3전대회를 열어 당을 사영화하고 독재하고 있다면서 6가지 죄상을 밝히고 하야할 것을 욕구했다. 이에 대해 장쉐량은 "동북4성은 대일(일본 외교), 대아(소련 외교) 외교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난징정부와 연락을 단절할 수 없다."라며 부사령관 취임 거부의 뜻을 밝히며 장제스에게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타전했다. 하지만 동시에 옌시산에게 화북의 치안을 유지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3월 21일 옌시산과 펑위샹이 연합하여 장제스 타도를 통전, 여기에 [[우페이푸]], [[쑨촨팡]], [[치셰위안]]같은 몰락한 [[북양군벌]]의 잔당들까지[* [[안휘군벌]]은 [[직봉풍전쟁]] 이후 퇴갤했기 때문에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직예군벌]]들이다.] 호응하는 등 전국 각지의 반장 군벌들이 속속 합류했고 4월 1일 옌시산이 타이위안에서 중화민국 육해공군 총사령관에 취임했고 같은날 리쭝런과 펑위샹도 부사령관에 취임했으며 스좌장에 총사령부를 설치했다. 나머지 반장 세력은 장제스에 대해 무력봉기를 감행하였고 산서군이 베이핑으로 진주하여 군사, 정치기관을 장악했다. 옌시산, 펑위샹, 리쭝런의 병력은 합쳐 60만에 달했고 곳곳에 20만에 달하는 반장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어 이들까지 고려하면 80만에 달했다. 이에 장제스는 4월 5일 옌시산 체포령을 하달했으며 5월 1일에는 전군에 대한 토벌령이 내려졌다. 이른바 중원대전의 개막이었다. 장제스는 5월 28일 전 직로연군 장령 서원천을 통해 장쉐량에게 출병할 것을 요청했지만 5월 30일 장쉐량은 동북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밝히며 국가대국에 이익되는 바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반드시 진력하겠다고 답했다. 4월, 옌시산은 타이위안에서 개조파 대표 천궁보, 왕법근 및 서산회의파 [[셰츠]], 쩌우루 등과 차례로 만나 서로가 갖고 있는 주장을 버리고 왕징웨이와 공동으로 당무를 책임지겠다고 합의했으며 중앙당부 위원회를 성립시키고 하고 이전에 개최된 중국 국민당 전체대표대회에 참여한 중앙위원 등 반장인물들을 포섭하여 장제스의 당무 장악에 대항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개조파와 서산파의 거국적 합작이 이루어졌으며 반장세력이 장제스에 대항하기 위한 또 다른 정통정부를 수립하자는 구상이 이루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