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집권제 (문단 편집) === 거리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 === [[통신]], [[교통]] 기술이 부족했던 과거에 거리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중앙 정부가 지방에서 세금을 걷으려 해도 '''걷은 [[세금]]보다 이동하는 비용이 더 큰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실제로 [[조선]]은 세금 운송 경로로 육로보다 해로를 선호했는데, 육로를 통해 세금을 운송할 경우 이동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전부 써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탓에 무리하게 중앙집권을 하느니 차라리 각 지방의 실력자에게 자치권을 줘 자기 동네는 자기가 알아서 다스리도록 하는 봉건제가 전 세계적으로 성행했던 것이다. [[한국]], [[중국]], [[베트남]] 역시 이런 점을 알고 있었으나, 그에 따른 비용을 감수해서라도 체제를 안정시키고자 중앙집권제를 채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땅이 넓어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에게는 자치를 허용했으며, [[광저우]]같이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에는 서양세력과의 교류를 위해 [[공행]] 같은 자치적인 무역창구 역시 마련했으며 [[고려]]나 [[조선]]도 [[강동 6주]], [[동북 9성]], [[4군 6진]] 같이 행정력이 닿기가 불가항력으로 어려운 지역은 정복을 위해 보낸 [[윤관]], [[조위총]] 같은 군사령관을 통해 자체적인 [[군정]]을 실시하거나 개척민의 우두머리나 장로, 아니면 [[여진족]] 추장에게 고을 수령직을 제수하는 [[토관 제도]]를 실시했고 행정력이 닿는 곳도 [[유향소]]를 설치하고 [[향약]]같은 자치규약을 마련하는등 [[지방자치]] 정책도 일부 시행하였으며 [[베트남]]은 [[하노이|기존의 영토]]보다 [[후에|새로]] [[다낭|정복해]] [[꾸이년|편입한]] [[사이공|영토]]가 훨씬 넓어 세도 가문 둘이 [[교지국|기존 영토]]와 [[광남국|새로 개척된 영토]]로 나뉘어 지배하는 [[남북조시대(베트남)|남북조 시대]]가 열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