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집권제 (문단 편집) === [[유럽]] === 유럽에서도 중앙집권의 역사는 생각보다 일찍 나타났지만, 동시에 그보다 더 일찍 출현한 [[지방자치]] 전통이 훨씬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관해서는 [[도시]], [[코뮌]], [[자유도시]], [[봉건제]], [[영주(중세)]], [[영지(역사)]] 등 관련 문서들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할 것. 유럽의 중앙집권제 시초는 [[고대 로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공화정치 하에서 [[고대 로마의 정치제도#s-5|독특한 관료제]]를 발전시켜온 [[로마 공화국]]은 영역을 확대하고 패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각 지방에 [[총독]] 파견을 확대하였고, [[로마 제국]] 시대에는 그러한 중앙집권화가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도시 로마가 처음 탄생할 적부터 나타난 지방분권적 전통이 강했는데, 제국 안보에 특히 중요한 몇몇 [[속주]]에 중점적으로 [[군단]]이나 행정관을 파견하였고, 그 외에는 [[치안]]을 비롯한 지방행정과 그에 따른 비용소모의 적지 않은 부분을 [[토호]]세력이 담당하였다. 통상 '황제'라 번역되는 로마의 Princeps는 [[중화(중국)|중화]] [[황제]]와는 달리 명목상 왕이 아니라 공화국(Res publica)의 수령(Princeps)이었기에[* Princeps는 Primus(맨 앞)와 -ceps(움켜쥐는 자, 취하는 자)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따라서 각각 首(머리 수), 領(거느릴 령)로 치환하여 수령(首領)으로 직역할 수 있다. 물론 명목이 아닌 실질로 따지면 로마의 수령이 곧 로마 왕과 다를 바 없었고 희랍인들도 실상을 주목하여 이 직위를 바실레우스(왕)라 번역했지만, 로마의 수령이 중국 황제보다는 인민과 군대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필요하다면 이 지위조차 복수의 공동황제 및 부제를 두는 식으로 권력을 분할하였다. 이 역시 [[기술]]과 [[교통]], 관료집단[* 존 힉스는 이에 대해 로마의 고대 관료제는 중국만큼의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제국의 기반이 붕괴되는 데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더 열악한 체제인 봉건제가 이를 대신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등의 한계로 어쩔 수 없었던 것인데, 앞서 급격한 중앙화를 경험한 전국시대 중국 왕조들이나 비슷한 시기인 [[전한]]의 중앙집권이 초월적일 정도로 고도화되었던 것이며 로마 또한 당대의 기준으로 대단히 높은 수준의 중앙집권을 이루었다. 참고로 [[한나라]]는 영토가 매우 광활했음에도 한나라 귀족들의 장원 규모는 로마 귀족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10분의 1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중앙집권은 고대 말 제국의 발전을 따라잡아가는 주변 세력의 압력 증대와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버티지 못한 지방세력의 이탈로 말미암아 [[서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동로마 제국]]에 한정적으로 존속하게 되었고, 서유럽에서는 [[봉건제]]가 자리잡았다. 고대 로마에서 이미 선보인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의 균형적인 발달은 [[중세]] 동안 사회경제적 발전을 겪으면서 [[자유도시]] 등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이들이 군주와 결탁하여 [[절대왕정]]으로 이행하면서 비로소 다시 출현하였으며, 그 즈음 각 지역통치자로 군림하던 귀족들이 보유하였던 여러 작위는 중국에서의 '진왕', '오왕' 등과 마찬가지로 비통치자로서 명예로운 칭호로만 기능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