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집권제 (문단 편집) === [[중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군현제)] 기원전 11세기에 [[주나라]]가 세워지며 봉건제가 실행되었다. 여러 제후들에게 분봉하여 지방의 통치권을 주었고, 왕은 수도 주변의 직할령만 다스리고 여러 제후들이 나머지 지방을 다스렸다. 그러나 [[견융]]의 침입을 받아 주나라가 사실상 멸망하고, 주 왕실만 간신히 [[낙양]]으로 이동해 [[동주]]시대에 접어들었다. 약체가 된 주나라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나, 여전히 [[명분]]은 중요했다. 제후들이 서로 앞다투어 자처하여 '나야말로 주 왕실을 지킬 적임자다[* 이를 [[존왕양이]]라고 한다.]'하고 나섰고, 제후국들은 경쟁하듯 [[군사력]]을 양성한다. 겉으로는 신하로서 왕을 모시겠다는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허수아비]]가 된 주왕을 핑계 삼아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제후들은 주나라 왕이 준 [[작위]]를 버리고 '나도 왕이다' 하며 칭왕하며 서로 자기들이 [[천하통일]]을 하려고 싸웠다. 자기들도 제후를 세워 이런 사태가 초래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 제2의 [[전국시대]]를 막기 위해서는 왕이 직접 통치하는 체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각각의 방식으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려 하였다. [[진(영성)|진(秦)나라]] [[진효공|효공]] 때의 개혁가 [[상앙]]은 [[군현제]]를 제안했고 곧 진나라에서 시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진나라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속에서 단결된 [[국력]]으로 급격히 성장하여 [[진시황]] 대에는 결국 통일에 성공한다. 이 시기 진나라의 고도화된 행정을 두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진나라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상 최초의 국가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진시황은 완전히 봉건제를 폐지하고 당시 [[재상]]이었던 [[이사(전국시대)|이사]]가 상앙의 군현제를 조금 손 봐서 전국적으로 [[군현제]]를 확대실시한다. 진시황 사후, 진나라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며 [[영자영]] 때는 결국 다시 사실상 봉건제로 돌아가고, [[고제(전한)|한왕 유방]]과 [[항우|초패왕 항우]] 등이 나와 [[초한전쟁|전쟁을 벌인다.]] 그렇게 주나라의 악몽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항우에 의해 진나라가 완전히 멸망하고, [[전한]]이 통일한 다음 군현제를 손 보아 [[군국제]]를 만든다. 반은 봉건제, 반은 군현제로 통치하는 것인데, [[제후왕]]을 분봉하는 것은 봉건제와 비슷하나,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바탕으로 사실상 군현제를 실시한 것과 다름없다. 이것마저 전한 [[경제(전한)|경제]] 때 [[오초칠국의 난]]이 터지고 이후 [[한무제|무제]]가 제후왕들의 권한을 완전히 축소시키면서 군국제는 유명무실해진다. [[전한]]의 중앙집권과 행정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고대 세계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전 [[인구]]를 상대로 한 [[인구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할 정도였다. 그 기록은 아직도 남아있는데, 당시 전한 조정이 파악한 6천 여만에 가까운 인구는 후세의 추정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후 [[후한]] 말 [[십상시의 난]]이 일어나 이는 군웅할거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삼국 정립 이전까지 다시 사실상 봉건제로 돌아갔다가 [[헌제]]가 [[조비]]에게 선양한 이후에는 [[오(삼국시대)|오나라]]를 제외하고 [[위(삼국시대)|조위]]와 [[촉한]]에서는 모두 군현제를 실시한다. [[서진]]은 조위의 제도를 이어받아 통치했는데, 얼마 안 가 [[팔왕의 난]]이 터지면서 또 사실상 봉건제로 돌아갔다가 [[동진]]시대에 가서야 겨우 다시 군현제를 시행한다. 공식적으로 중국은 진나라 통일 이후부터는 계속 중앙집권국가였지만, 혼란한 시대가 올 때마다 봉건제 비슷하게 돌아가곤 했다. [[당나라]] 때도 [[번진]]들이 난립하다 [[오대십국시대]]에 들어섰고, 봉건의 역사가 완전히 끊기고 중앙의 통치가 계속된 것은 [[송나라]] 때부터였다. 이 때부터 [[원나라|원]], [[명나라|명]], [[청나라|청]]까지 이어지다가, 약 1,200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청말 [[변법자강운동|변법운동]] 시대였는데, 중국 신지식인들이 [[유럽]] [[국민국가]]들의 지방자치 및 법치주의 전통에 주목하고 입헌군주정을 추구하면서 "봉건"을 거론하며 지방자치의 확대를 주장하였다. 이는 각각 국회와 지방의회 역할을 하였던 자정원과 자의국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입헌 자체는 저지되면서 부분적 성과만 거두었고, 이렇게 개혁이 불발된 반동으로 추진력을 얻은 것이 바로 청조와 옛 중국 그 자체에 대한 타도였던 [[신해혁명]]이었다. 문제는 당초 구상과 달리 이해와 견해가 엇갈리는 각 지방세력이 패권을 다투면서 [[중화민국/북양정부|북양정부]]의 [[군벌시대]]가 개막되었다는 점인데, 그 [[붕괴 후 혼란기]] 속에서 당대 중국인들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겪고 만다. [[1940년대]] 이후로는 [[군벌]]이 완전히 소멸되고 [[국공내전|공산화하면서]] 중국의 마지막 봉건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세월이 흘러 [[대만]]이 [[장제스]]의 독재정치에 따른 영향으로 중앙집권체제의 흔적 자체는 적지 않게 남아있으면서도 [[지방자치]]가 실행되는 반면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인 탓에 아직도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고수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