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상주의 (문단 편집) == 비판 == 중상주의는 위에서 언급했듯 이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가 없으며, 오직 관료와 상인들이 자신들의 특혜와 독점을 정당화 하기 위해 내놓은 파편적 정책과 논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파편적 정책과 논리는 권력을 손에 입은 상업의 힘과 당시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 마키아벨리즘적 정치논리 때문에 꾸준히 옹호되었고 애덤 스미스와 같은 당대 지식인들은 다음의 문제점을 들며 이를 통렬하게 비판했었다. '''1. 제로섬 게임 가설에 따른 무분별한 귀금속 집착과 이에 따른 물가 상승. ''' 중상주의자들은 수출은 증가시키고, 수입은 억제시켜야 국부(國富)가 늘어나서 이득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중상주의 당시 금본위제 or 은본위제에선 귀금속이 곧 화폐인 고로 더 많은 금과 은을 보유할 때 마다 돈을 찍어내는 꼴이 되었다. 당연히 중상주의적 논리에 따라 새로운 금광을 채굴하거나 일방적인 보호무역으로 대량의 귀금속을 확보해도 국고만 두둑해질 뿐이며, 실질적인 경제규모는 그대로라 물가만 널뛰기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데이비드 흄]]은 이를 체계적으로 비판하였는데, 수출의 증가는 통화량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물가의 상승을 가져오게 되므로 수출에 의한 이득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2. 노동 및 생산 가치에 대한 폄훼''' 중상주의 경제학에선 자산 역시 귀금속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자산에는 부채 또한 포함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최소화 할 수록 좋은 것에 불과하다.''' 즉 당시 중상주의 경제 하에선 까놓고 말해 전쟁에서 쓰일 잉여자본을 제외한 모든 것이 평가절하 되고 있었으며, 직접적으로 대량의 귀금속으로 확보할 수 있는 중계무역이나 전체 귀금속 수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광업을 중요시했다. 당연하지만 이 두곳의 경제활동에 대한 이익은 경제적 기득권들의 전유물이었고 정작 이 과정에 참여한 노동자와 백성들에겐 최소한의 보상만 주어지거나 아예 배재당하기 일쑤였다. 초창기 고전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강하게 비판한 학설이 이 중상주의다. 애덤 스미스는 국민의 노동 능률(생산성)이 중상주의의 귀금속보다 더 큰 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도 이 중상주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그는 진정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경쟁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3. 잉여자본 재투자 및 공정무역 부정. ''' 중상주의 시스템상 귀금속은 국익과 이를 수호하기 위한 상비군을 위해 최대한 비축 및 관리해야 하는 요소이며, 이를 [[보이지 않는 손|개개인이 필요에 따라 무분별하게 사용]]하거나 타국에 귀금속을 유출하는 것 자체를 국익에 반하는 방종으로 본다. 그러니깐 '''국가가 허용하지 않는 한''' 민간의 적극적인 재투자도 막혀 있으며, 외국과의 거래 또한 일방적인 귀금속 확보가 가능할 경우에만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다. 이러다보니 아무리 많은 잉여자본=귀금속이 유입되어도 재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니 실물경제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고, 귀금속을 탐닉하는 중상주의 국가와의 무역은 항상 상대방이 일방적인 손실을 감당해야 했기에 사실상 중장기적인 무역이 불가능해졌다. '''4. 자발적 경제성장을 유지할 원동력과 동기 그리고 체계성 부족 ''' 중상주의에선 국가는 국익을 위해 최대한 귀금속을 확보하기 위해 상인계층을 옹호하지만, 정작 다른 구성원에겐 귀금속 유출을 막기 위해 절약과 저축, 인색함을 강조하며 소비를 억제시키며 일방적인 헌신을 강요했다. 결국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경제주체가 경제참여에 따른 이익을 공유받지 못하기에 자발적으로 경제성장을 유지할 원동력과 동기 그리고 체계성이 부족했다. 결국 중상주의는 기득권의 정치적 입장이 바뀌게 될 경우 그대로 경제 자체가 흔들리기 쉬웠다. 만약 정권이 교체될 경우 농경사회의 대표적 미덕인 청빈과 공익을 추구하는 구성원의 영향을 받은 기득권들로 인해 해당 국가의 경제가 동결되거나[* [[중농주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경제학자'라고 자칭한 지식인들은 정말로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를 무력화시키고 농경사회로 돌아가는 선택지를 꺼내든 상태였다.], 아니면 기득권이 합리적 판단이 마비된 채 귀금속을 착취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다[* 단적으로 중상주의 말기에는 [[바로크]]나 [[로코코]]로 대표되는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귀족문화가 꽃을 피웠다. 고급스럽게 적으면 [[중진국 함정]]이 된다.] 경제 전체가 파탄나기 쉬웠다. '''5. 이론적 기반 부재 및 그에 따른 경제의 무규범화''' 중상주의에선 국가 안보와 정권유지 정도를 제외하곤 (실질적으론 '''기득권의 탐욕이나 군사적 확장''') 왜 그 자본을 모아야 하는 지에 대한 합당한 해명이 없었다. 이러다보니 당대 학자들 중 그 누구도 '상업활동'을 독립된 학문으로선 다루지 않아서 경제가 그대로 방치되고 말았다. 중상주의는 애시당초 기득권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제안된 논리였다. 그리고 중상주의 당시 경제활동 종사자들 입장에서도 경제학 지식은 공익성과 도덕성이 지극히 떨어진, 자신의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잔머리나 비법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 이 때문에 바로 경제'''[[학문|학]]'''의 시작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으로 보게 된다. 21세기로 비유한다면 보이스피싱이나 랜섬웨어 등이 특유의 노하우나 기술을 통해 막대한 [[지하경제]]을 창출하고 있긴 하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요소가 없으니 '''보이스피싱학'''이나 '''랜섬웨어학'''과 같은 독립된 학문은 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즉 중상주의 당시에도 상업에 대한 인식은 [[베니스의 상인]]의 사일록을 통해 볼 수 있듯 '이딴 장사치 짓을 학문으로 인정하기엔 너무 부도덕하다' 라는 편견에서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고, 기껏 해 봐야 마키아벨리즘적 사고에 따라 국부를 비열하지만 효과적으로 축적하는 필요악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론적 뒷받침이 없으니 당시 학자들은 중상주의 기반 논리나 상업활동 관련 지식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수세기에 달하는 동안 중상주의 경제는 사리사욕을 터부시 하는 문화적 장애물이 있는 상태에서 국익이라는 외압에 의해 억지로 경제가 돌아갈 뿐이었다. 결국 중상주의 기반 경제는 마치 펌프로 물을 끌어 올리듯 국가 전체의 부 중 상당수를 권력을 가진 정부의 잉여자본으로 꾸준히 누적시킬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재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 대부분 경제주체들의 엄청난 피로감과 제자리 걸음만 반복하는 생산역량 그리고 과도한 귀금속 유입으로 인한 물가상승과 직면하게 된다. 학문적 체계성이 없었기에 중상주의를 옹호하는 학자와 관료들은 주로 정치적인 해법으로 이런 문제에 접근하며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