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도우파 (문단 편집) == 한국에서의 중도우파 == 한국에서 중도우파 좌장은 1940년대 초반 [[안재홍]]부터 시작한다. 신민족주의 이념으로 건준에 김병로·백관수·이인 등 우익계열의 민족주의 인사들을 참여시켜 건준을 명실상부한 민족운동세력의 조직으로 확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이 건준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안재홍과 같은 중도우파세력들은 건준에서 밀려나갔다. 과거 [[독재]]와 [[인권]] 탄압을 일삼던 군사정권 시절 이에 대항한 [[민주당계 정당]]의 한 축이 되는 세력으로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등에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상도동계]]를 중도우파 정치세력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의 경우 평화민주당 독립 이후부턴 원외 재야계 참여로 인해 점점 진보적인 성향을 띄기 시작한다. 해당 정당들의 이념 성향은 [[중도개혁주의]], [[중도주의]], [[보수자유주의]] 등으로 분류된다. 기타 자세한 건 [[개혁주의]], [[민주당계 정당]] 항목 참고.] 당시 중도우파 정파들은 [[자유보수주의]] 성향에 가까웠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이라는 범주에 묶였던만큼 중도주의에서 우익까지 폭넓게 존재했다. [[민주자유당]]에서 [[상도동계]]를 비롯한 [[민주계]]를 주축으로 해 군사독재 세력의 후신인 민정·공화계를 숙청하거나 굴복시켜 [[신한국당]][* 원래는 민정계와 공화계가 압도적 다수였으나 그들의 규모는 줄어들어서 당시에는 신한국당의 계파가 김영삼과 김영삼 영입 인사를 주축으로 한 민주계와, 박정희 군사정권 세력의 후신이라고 불리는 민정·공화계로 신한국당 내에서도 계파가 나뉘어 있었다.]을 창당한 김영삼이 퇴임하여 정계를 떠나자, 여전히 다수였던 민정·공화계[* [[제15대 대통령 선거|15대 대선]]의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을 지지했다. 반면 민주계는 [[이수성(정치인)|이수성]] 또는 [[이인제]]를 지지했다.]는 [[이회창]] 총재 밑에서 당의 정책과 이념, 운영방식을 보수화하는 작업을 주도했고, 이로 인해 신한국당의 후신 [[한나라당]]은 중도좌파적인 면모를 제거하면서 완전한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이 때 이러한 조치들에 반발해서 상도동계에서 중도좌파적인 [[김영춘(정치인)|김영춘]], [[박재호]]와 소장파로 꼽히던 [[김부겸]]이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현재도 민주당 소속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말기에 친박이 당권을 잡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고 나서 당은 경제적으로는 좌경화했고 사회보수주의화했다.[* 경제 정책은 [[김종인]]의 영향을 받아서 [[경제민주화]]를 통해 생애주기별 복지정책 등 왼쪽으로 갔고, 대북관이나 역사관이 이전보다 훨씬 보수, [[박정희]]화되었다. 즉, [[중도우파]] + [[자유보수주의]]에서 [[우파]] + [[사회보수주의]]로 바뀌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로는 한동안 중도우파 세력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가[* 유승민과 바른정당의 실패 등도 한몫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다시 존재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여러 실책과 [[국민의힘]]의 지속적인 중도화 전략으로 중도층과 중도우파가 결집해 [[오세훈]]과 [[박형준]]이 각각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과 [[부산광역시장|부산시장]]에 당선되었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당선된 것도 중도우파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토착 중도우파 이념에는 [[중도실용주의]], [[따뜻한 보수주의]]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