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난하이 (문단 편집) === 명나라 === 그리고 [[명나라]] 때인 1406년(영락 4년) [[영락제]]가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자 이곳은 다시금 황궁의 후원으로 편입되었다. 영락제가 [[자금성]]의 위치를 원나라의 황궁보다 약간 남쪽으로 앞당기면서 태액지 남쪽에 난하이를 조성하였으며, 여기에서 나온 흙과 자금성 주위를 두르는 퉁즈허(筒子河)를 파면서 나온 흙을 모아 황성 북쪽에 만수산(萬壽山, 뒷날 징산(景山)으로 개칭)을 쌓았다. 1459년(천순 3)에는 이곳에 광대한 규모의 서원(西苑)을 건설했다. [[가정제]]가 자금성 건청궁에서 벌어진 임인궁변(壬寅宮變)[* [[가정제]]의 가혹한 학대를 견디다 못한 [[궁녀]]들이, 가정제를 암살하려고 모의했던 사건. 그러나 궁녀들의 암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일을 벌였던 궁녀 16명은 전원 처형당했다. 이 불쌍한 궁녀들의 이름은 양금영(楊金英), 형취련(刑翠蓮), 양옥향(楊玉香), 소천약(蘇川藥), 요숙고(姚淑皐), 왕괴향(王槐香), 관매수(關梅秀), 유묘련(劉妙蓮), 진국화(陳國花), 장금련(張金蓮), 왕수란(王秀蘭), 서추화(徐秋花), 정금향(鄭金香), 황옥련(黃玉蓮), 양취영(楊翠英), 장춘경(張春景)이다.]으로 죽을 뻔하자 서원으로 거처를 옮겨 20년간 지내다가 죽기 전날에야 환궁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