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외교/비판 (문단 편집) == 적이 많은 중국, 왜곡된 [[중화사상]]으로 인한 외교적 결례 남발 == > "중국 정권의 본질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단지 일시적으로, 힘의 부족 때문에, 비교적 온화한 표정을 내비쳤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감을 얻게 된 순간 즉시 본래 가지고 있던 억압의 본질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중에서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외교방식은 그야말로 자타공인 [[패권주의]]이자, 속된 말로 가히 '''[[갑질]]'''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상적인 외교를 할 의지조차 없는 상황으로, 이웃국가를 향해 중국 외교부장이 직접 대놓고 '''옛날처럼 우리 [[속국]]으로 돌아와라'''고 하는 지경이며 [[https://en.wikipedia.org/wiki/Wolf_warrior_diplomacy|전랑 외교]][* 영화 [[전랑]] 시리즈에서 따온 이름이다. 즉 공격적인 외교 팽창 정책을 말한다.]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과거 전세계를 양분했던 미국과 구소련도 이딴 식의 강압적인 행태를 보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강압적으로 굴 경우 상대 국가가 반발해서 반대편에 붙어버리면 먹을 수 있는 이득도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비록 [[소련]]이 [[소비에트 제국]]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당근과 채찍 둘 다 확실한 방법을 사용해 상대국 외교관과 국민을 잘 조련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절반에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이런 막무가내 팽창주의 외교는 오천 년 중국 역사에서도 없었지는 않았지만 아주 드물었다. 자신감으로 외부에 힘을 투사하던 시기는 멀게는 [[상나라]][*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어 실존한 것으로 입증된 중국사 최초의 국가.]나 [[춘추오패]], [[전국칠웅]], [[한나라]] [[무제(전한)|한무제]] 때, [[수나라]], [[당나라]], [[명나라]] [[영락제]] 때 뿐이다. >그러나 [[중화민국|중국]]이 제1등국의 지위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옛날부터 중국에는 '약한 자를 구하고 위태로운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 이와 같은 좋은 정책이 있었기에 수천 년 간 강대했을 때에도 [[베트남|안남]], [[미얀마|버마]], [[대한민국|조선]], [[태국|시암]] 등의 소국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유럽의 바람이 동으로 불어오자]] 안남은 [[프랑스 제국|프랑스]]에 멸망되었고, 버마는 [[대영제국|영국]]에 멸망되었으며, 조선은 [[일본 제국|일본]]에 [[경술국치|멸망]]되고 말았다. 따라서 중국이 만일 강대해진다면, 우리는 민족의 지위를 되찾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일대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만일 중국이 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세계에 있어서는 별 이익이 없으며 오히려 큰 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세계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지금 세계의 열강이 추구하는 것은 [[제국주의|다른 나라를]] [[식민지|멸망시키는 것]]이다. 만일 중국이 강해져서 열강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고, 열강의 [[제국주의]]를 [[일대일로|흉내내어 같은 길을 걷는다면,]] [[역사는 반복된다|그들의 자취를 그대로 밟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의 정책, 즉 '약한 자를 구하고 위태로운 자를 돕는다'는 정책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민족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약소 민족을 돕고 열강에는 저항해야 한다. 전 인민이 이 뜻을 단단히 정하지 않는 한 중국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다. 우리는 아직 발전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약한 자를 구하고 위태로운 자를 돕는다'는 뜻을 단단히 정해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그리하여 장차 강대해졌을 때 오늘날 몸으로 느끼고 있는 열강의 정치·경제적 압박에 의한 고통을 되새겨, 장래 약소 민족이 만일 이와 같은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제국주의를 소멸시켜 버려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치국, 평천하]]'인 것이다. >---- >[[쑨원]], 1924년 3월 24일 연설 중 사실 쑨원의 이 말도 굉장히 자국 중심적이고 패권주의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애당초 수천년 간 자기들 덕분에 주변 국가들이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전제부터가 잘못됐는데, 실제로는 수천년 간 주변국에 중화패권주의 중심의 질서를 강요했으며 침공도 무수히 벌인 게 중국이었다. 당장 한국만 해도 [[위만조선]]이 [[한나라]]의 [[패권주의]]에 정복당했고, 후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도 [[수나라]]와 [[당나라]]의 [[패권주의]]를 강요받으며 침략에 맞선 방어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특히 [[삼국시대]] 때 [[한민족]] [[국가]]가 [[전성기]]를 맞았던 시절은 중국의 분열기와 놀랍도록 일치한다. [[백제]]와 [[고구려]]는 모두 중국이 [[오호십육국시대|5호16국 시절]]을 맞이했을 때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한반도]] [[국가]]들은 [[위진남북조시대]] 등 중국의 분열기에 초기 국력을 키워 고대국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북위]]마저 동서로 분열되어 싸우다가 [[문제(수)|수문제]]에 의해 중원이 통일되자, [[고구려]]는 기존의 정복전을 멈추고 방어전으로 일관해야 했다.] 중국은 [[근대]]에도 [[한반도]]에 대한 간섭과 영향력 행사를 위해 [[청일전쟁]]을 치렀다(현대의 6.25 전쟁도 있긴 하지만 그건 쑨원 사후의 일이니 제외). 베트남도 한나라에 정복당한 이래 [[쯩 자매]]의 대중항쟁부터 현대의 [[중월전쟁]]에 이르기까지 중국에게 엄청 침공당했다. [[티베트]]·[[위구르]]도 [[청나라]] 때 정복되었다가 [[만주족]] 정권이 무너지며 잠시 독립했으나 곧바로 중공에게 침공당해 합병당했으며 중공은 지금도 해당 지역에 잔혹한 탄압을 저지르며 중국공산당에 맞서 투쟁하는 자들은 잔인한 고문과 처형을 당함은 물론이고 아예 민족동화까지 당하고 있다. 다만 쑨원이 살던 시대는 중국에서 전근대적 중화사상의 영향력이 아직 건재했을 때이니(비록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탈 탓에 예전만큼 강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비록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쑨원이 나름대로 진보적인 말을 했다고 볼 수도 있고 [[시진핑]]이 중국의 대외관계를 열심히 막장으로 만들고 있으니만큼 쑨원의 발언을 좀 후하게 평가할 여지 또한 있다. 미국이 자유와 인권을 표방하는 것처럼 최소한 표면적으로나마 약소국 구제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도 볼 순 있겠다. 중국 덕분에 주변 국가들이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전제 또한 중국이 한창 주변국에 갑질을 하던 시기가 아니라 나름대로 주변국들을 존중해주던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러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시기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줄 때였다. 비록 북방 유목민이나 그들에게 동화된 한족으로 구성된 북병들이 약탈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순수 한족들로 구성된 남병들은 약탈을 저지르지 않고 일본군과의 전투에 집중했다. 명나라 조정의 공식 입장도 일본의 침공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이런 이유 때문에 현대의 한국은 6.25 전쟁에서 죽은 미군과 임진왜란 때 죽은 명군을 기념하는 시설이 동시에 존재한다.] 물론 쑨원은 [[중화민국]]의 국부이지 지금 우리가 부르는 중국, 중국공산당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쑨원의 글에서 나타나는 전근대식 중화사상과 비교해도 현대의 중국의 외교는 상당히 변질되어 있으며 문제점은 더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만일 어느 날 중국이 안면몰수하고 초강대국이 되어 [[미중 패권 경쟁|패권을 주장하고]], [[2021년 신장 목화 논란|여기저기]] [[티베트 노동수용소|남을 괴롭히며]], [[일대일로|남을 침략하는 한편]],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남의 것을 탈취한다면]], 세계의 모든 인민들은 응당 들고 일어나 중국을 사회제국주의로 규정하고 반대하여 중국 인민들과 함께 무너뜨려야 할 것이다. >---- >[[덩샤오핑]], 1974년 UN 연설 中 특히 중국의 외교 정책은 고압적인 자세, 쉽사리 양보라는 걸 하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 등으로 상대국 입장에서 타협적인 저자세로 나오지 않는 한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은 주변 국가들과 사이가 대부분 안 좋은 편이다. 심지어 [[강약약강]]도 아닌 게, [[중국-소련 국경분쟁|이 짓을 공산권 최강국 소련에게도 했다.]] 그리고 그때 미국이 안 살려줬으면 그대로 소련에 의해 중국은 지도상에서 지워질 뻔했다. 오죽하면 중국 내부에서조차 "중국 외교관들은 모두 손 자르고 사퇴해야 한다"는 발언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2018년 9월에는 [[스웨덴]]으로 여행 간 중국 관광객이 한 숙박시설에 하루 가까이 일찍 도착해 로비에 묵게 해달라고 하다가 끌려나간 일이 있었는데[[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9/18/0200000000AKR20180918082000009.HTML|#]] 중국 정부는 스웨덴 정부에 항의하며 이 사건을 조치해 달라고 매우 강한 성명을 냈다. 한편, [[제주 성당 묻지마 살인 사건|한국 제주도에서 중국인이 현지 주민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시하는 정도로 언급을 마쳤다. [[외교적 수사]]로서 유감의 의미는 피해국이 발언할 때와 가해국이 발언할 때 판이하게 다르다. 피해국의 유감표명은 '니들이 사고친 거 때문에 빡쳤으니까 사과하고 제대로 수습해라.'는 분노의 우회적 표현이지만, 가해국의 유감표명은 '[[아몰랑|그건 우리 잘못 아님]].'이라는 책임회피성 발언이다. 즉, 중국은 자국민이 외국에서 현지인을 살해하는 대형사고를 쳤음에도 우리 국민 잘못 아니라고 책임회피를 한 것이다. '''명청 때도 자국민이 타국민을 죽였는데 이 수준으로 외교를 하지 않았다.'''[* 명청 때는 국력과 무관하게 도의적 책임을 지려는 태도라도 보였지만 현대 중국은 그마저도 없다. 오히려 전근대 왕조들보다 현대 중국의 수준이 더 떨어진 꼴.] 당장 이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던 [[프랑스 제2제국]], [[독일제국]], [[추축국]]도 사방에서 고립당하고 패망했다. 그러니 외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자국의 국력이 강해도 주변에서 계속 반발하고 저항하려 들면 그 막강한 국력도 결국 소모되기 마련이다. 당장 인류 문명사 최대최강의 국력을 자랑하는 미국조차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간에서의 연이은 실책]]으로 국력소모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을 보라 20년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승리는 제대로 못하고 탈레반의 성장만 도운 꼴이 되었고 2021년에 결국 패배와 동시에 미군을 철수시켰다.] 외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한 많은 동맹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만화영화에 나오는 것 마냥 혼자서 [[세계정복|세계제패]]를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제국]]과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다. 두 나라 모두 그 당시 유럽에서 국력도, 인구도 제일 많고 강했지만 사실상 동맹국 없이 혼자 싸우다가 결국 전쟁에서 패하여 멸망했다.] 세계제패를 노려볼 정도로 강대국이 될 낌새가 보이면 주변국이나 타 강대국들끼리 뭉쳐 이에 대응하려는 외교적 연합 견제가 들어오기 때문. 과거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미국이 초강대국의 반열에 근접했다고는 하지만 유럽은 유럽 연합으로 뭉쳐서, 러시아는 중국과 연계해 미국을 견제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미국을 견제하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조지 워커 부시|조지 W. 부시]]가 [[이라크 전쟁|이라크를 조지려고]] 했을 때 외교적으로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유럽과 러시아 등 여러 나라들이 한 목소리로 반대한 것이 그 증거. 워낙에 부시가 유엔 규정조차 무시하고 막나간 것도 있었지만, 중동 패권을 노리는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유럽과 러시아가 견제를 들어온 것이다.[* 다만 조지 W. 부시가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일단 그의 실책이긴 하지만 반대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자업자득인 면도 존재한다. 사담 후세인 본인부터가 [[이란-이라크 전쟁]]과 [[걸프 전쟁]]을 일으켜 [[이란]]과 [[쿠웨이트]]를 차례대로 침공하고 계속해서 미국을 도발하는 등 결코 선의의 피해자라고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의 그러한 행보는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보여주는 모습과도 매우 유사했다.] 중국이 믿는 것은 14억이라는 인구와 강한 경제와 군사력, 그리고 희토류[* 사실 희토류는 희귀하다기보다는 희토류를 생산할 때의 그 반사적으로 오는 엄청난 환경오염과 같은 부작용 때문에 그런 거다. 중국은 경제발전이라면 중국 국민들의 편의는 버렸기에 희토류로 인한 자국의 환경 파괴를 신경쓰지 않고 생산한 결과 싼 값과 높은 품질로 희토류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센가쿠 열도 분쟁이 발발하면서 희토류 수출 중단을 선언했을 때 그 파괴력을 본 미국과 일본은 희토류 자체 생산에 투자한 덕분에 중국의 희토류 협박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와 같은 자원들이다. 중국의 14억 시장은 전세계 어느 나라든 탐내고 있는 큰 시장이다. 또한 공산당이 원한다면 인민들을 언제, 어디서든 통제하고 처리할 수 있음을 한국과 같은 주변 국가들에게도 적용해 외교적 고자세로 일관하는데, 사실 현대 사회에서의 외교는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약소국을 대놓고 휘두를 수 없다. 일단 UN에서 다 똑같이 한자리를 차지하는 동등한 국가인데다 설령 경제적, 군사적 압박이나 전쟁을 벌이려 해도 주변국이나 경쟁국들이 각종 지원을 해주며 견제해오기 때문. 그래서 21세기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인 미국조차 일단 공식적으로는 국제여론을 의식하고 나름대로 타협을 시도하는 자세를 취하곤 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에 반하는 태도로 일관하는데, 전통적인 동아시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강대국으로 존재했던 만큼[* 물론 [[백등산 전투]]라든가 [[정강의 변]] 같은 사건들도 있고 거란족의 요나라나 여진족의 금나라나 몽골족의 원나라나 만주족의 청나라 등등 약세에 몰리거나 아예 나라가 망했던 적도 많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대체로 동아시아의 강대국이자 나름대로 선진국이었다.] 여기에 기반한 세계관인 [[중화사상]]이 깊이 박혀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중화왕조든 로마 제국이든 근대 열강이든 이런 우월감과 내셔널리즘이야 당연히 전부 있었지만, 문제는 현대에는 중국만이 강대국이 아니고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당장 태평양을 건너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존재하고, 중국 국경과 맞닿아 있는 베트남, 인도, 한국, 일본 또한 중국과 지속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으면서도 중국이 간단하게 제압할 수는 없는 상당 수준의 국력을 지닌 국가들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첫 관문인 한국의 경우 설령 한국 혼자 싸운다 가정해도 중국 역시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 중국은 과거에도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적, 경제적으로야 가장 발달된 선진국이었을지언정 군사적으로까지 그러지는 못해서 북방 민족들과는 곽거병, 영락제 같은 예외가 아니면 항상 얻어터지기 일쑤였고, 서역과는 하서회랑 같은 지역이 아니면 직접 지배할 생각도 못했으며, 베트남과는 그나마 1000여년간 지배하긴 했지만 한번쯤 반란 맞고 일시적 독립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응오꾸옌에 의해 베트남이 완전히 독립한 뒤에는 영락제 시기에 잠깐 재정복된 것 외에는 제압하지 못했다. 한반도 역시도 마찬가지로 한사군을 통해 상당기간동안 일정 부분 통치하기도 했지만 너무 멀어서 통치력이 약한 편이었으며, 그나마도 임둔, 진번은 곧장 폐지, 현도군은 계속 자리를 옮겨다녔고 낙랑군만 제대로 유지되었다. 그나마도 점점 강해지는 고구려에게 계속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한사군과 그 후신국들이 모두 멸망하고 흡수되었다. 수나라때는 백만대군까지 동원하고도 패배했으며, 그 뒤에서 2차례 더 침공했다가 또 져서 수나라가 망해버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중국과 주기적으로 치고받았지만 결국은 원나라 시기에 잠시 속국화한 것 외에는 조공-책봉 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즉, 중국이 주변국들 중에선 가장 강한건 맞고 또 그걸 인정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이들 모두를 다 제압하고 복속, 정복이 가능한 시기는 별로 없었다. 주변국은 막강한 문화적, 경제적 선진국인 중국에게 반기를 들어 전쟁하면 피곤하니 달달한 떡고물을 얻을 겸 비위를 맞춰주었고, 중국은 주변국들을 다 말 잘 듣게 할 힘은 없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불안하므로 경제력과 문화를 바탕으로 종주권을 인정받으면 굳이 불필요한 전쟁을 하지 않고 주변국과 교류를 하는 쪽을 선택했을 뿐이며, 상대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중국의 군주가 영토 확장을 위해 정복을 하고자 하면 주변국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즉,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책봉관계는 중국쪽이 특별하게 강해진 시기만 아니면 서로 윈윈인 관계였던 셈. 결국 따지고 보면 전근대 동아시아나 현대 동아시아나 중화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명목상 중국을 상전 취급해주냐 마냐만 빼고 보면 실상은 상호이익을 위한 관계라는 것에서 다를게 없다. 게다가 러시아는 다른 주변국과 다르게 절대로 중국보다 국력이 낮다고 볼 수 없는 강대국이며, 일단은 중국과 군사 훈련을 같이 하고는 있으나 이조차도 대미 견제라는 공통분모로 협력할 뿐이지 실제론 중국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중국에 경제가 예속될 가능성이 높아져 더욱 경계하고 있다. 현대 시대에 들어서 패권국과 중심국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국가로 이전되자 그나마 [[20세기]]와는 달리 중화사상은 많이 약화되었다. 문제는 시와 때를 파악하기는커녕 세계 정세에 대한 인식이 19세기 이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주변국들에게 중화사상을 강요하는 [[중국공산당]]과 중국 지도부들이다. 물론 이에 동조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도 문제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