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경제 (문단 편집) ==== 1978년~2003년 ==== 1970년대 말 중국은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으로 인해 '''세계 최빈국'''이었다.[* 단적인 예로 1978년 간신히 빈국을 벗어날 무렵인 한국의 1인당 gdp가 1400달러 대 였을때 중국은 200달러도 되지 않았으며 대다수의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못하였다.] 이때 덩샤오핑은 이때까지 고수해왔던 사회주의 자급경제를 폐기하고 개혁개방이라는 정책을 도입해서 순수 사회주의 노선에서 선회한다. 그렇지만 아직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를 포기하진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최고 수준의 생산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완성된 후에야 실현 가능한 체제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르면 경제적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기존 생산 양식의 모순이 드러나고 정치적 격변에 의해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게 되는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특성인 생산의 집중과 집적이 극에 달하면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더 이상의 경제성장을 방해하고 온갖 사회 모순과 갈등을 초래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실현 가능한 것이다.] 개혁개방을 하는 것일 뿐이다. 일단 순수사회주의 폐기는 농업에서 마오쩌둥 시절의 인민공사의 폐지부터 시작했다. 1950년대말부터 실시된 농업집단화로 만들어진 인민공사는 원래 식량을 증산하기 위함이었으나, 농업 기술 수준이 낮고 전근대적 농업 생산과 경영이 지배적이었던 현실 때문에[* 농업 생산에서 첨단 과학기술이 도입되고, 공업 생산을 할 때처럼 집단 작업을 통한이 이루어지는 단계가 되어야 농업 집단화를 통한 식량 증산이 가능하다. 아니 그 단계에서는 집단화를 하지 않는 것이 낭비가 된다. 집집마다 트랙터가 1대, 고추 말리는 기계도 1대씩 있는 건 돈지랄의 극치일 뿐이니..]도리어 비능률과 비효율을 불러와 식량생산을 매우 떨어뜨렸다. 덩샤오핑은 이렇게 인민공사를 폐지하면서 토지를 농민에 임대형식으로 불하했고, 이는 식량생산을 크게 늘렸다. 그래서 건국 이래 항상 존재했으며, 1950년대 말에 [[대약진운동]]에서 참극을 빚은 식량난은 그 뒤로 사라졌다. 1970년대 말의 중국의 상황은 농업 중심의 국가성향이 강했다. 쉽게 말해서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아 농촌 인구가 전체 인구의 82%에 달했던것이었다. 노동력은 엄청나게 풍부하지만, 일단 자본과 기술력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덩샤오핑은 급격한 개혁개방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소련을 보면 확실히 덩샤오핑이 선견지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련은 1~2년내에 시장경제 도입과 다당제 실시등의 급격한 개혁개방을 실시했다가 결국 체제붕괴 크리를 맞았다. 그러나 붕괴된 이후에 엄청난 혼란이 있었으며,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러시아인들을 삶은 소련 시절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흑묘백묘론]]을 얘기한 것처럼 생산력 수준이 낮은 가운데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인민들이 굶어 죽고, 나날이 빈곤해지는 것도 고려했다.[* 경제학 쪽에선 노동요소의 편중을 완화하기 위함이라는 얘기도 있다.] 우선 수도 베이징에서 머나먼 광둥, 푸젠 지역의 세 개 도시부터[* 베이징으로부터 한 1500km ~ 2000km 정도 떨어져 있다.] 개방을 한다. 열어두고 실패하면 말고 되면 좋은 식이었던 것이다. 물론 개방만 한 게 아니라 마케팅도 좋긴 했다. 이른바 남순강화.[* 덩샤오핑이 남쪽을 돌면서 말을 한다.] 어쨌든 개방은 계속되고, 천안문 시위의 폭력 진압으로 유발된 중국 체제 불안정에 대한 대내외적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화교 기업가 자본가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덩샤오핑의 선택은 아주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세 개 도시 중 대표 도시로 광저우는 아주 미친듯이 발전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계속 특구를 늘려가게 된다. 이른바 점이 선으로 이어지고, 결국 면으로 확대되는 점-선-면의 기본 정책의 기조를 유지한다. 현재 중국의 해안 지방은 중진국 이상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제는 개발의 방향을 내륙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른바 서부대개발이 바로 이것이다. 결국 [[후진타오]] 시기인 2000년대 중반 중국은 세계 최빈국을 탈출했고, 1990년 세계 10위였던 GDP는 2010년에 세계 2위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