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환 (문단 편집) === [[조인]]을 격파하다 === 222년 6월에 [[이릉대전]]이 끝난 직후, 222년 9월에 [[조비의 남정|조비는 손오를 침공한다.]] 조인은 유수를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조인은 속임수를 써서 선계라는 곳을 노린다고 해놓곤 유수를 공격한다. 주환은 이에 속아 넘어가서 병사를 나누어 선계로 가도록 했고 결국 유수에서 5천의 병력으로 수만의 조인군을 상대해야 했었다. 이때 주환은 두려워하는 부하들에게 승리를 자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쪽 군대가 교전함에 있어서 승부의 관건은 장수에게 있지 병사들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오. 여러분들은 '''조인이 병사를 쓰고 지휘하는 것이 나와 비교하여 어떻다고 들었소'''? 병법에, 공격하는 쪽은 배가 돼야 하고 수비하는 쪽은 절반이면 된다고 하는 것은 쌍방의 군대가 모두 평원에 있고 성벽이나 못의 수비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또 쌍방의 병사들을 용감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똑같음을 말하는 것이오. 현재 '''적군의 장수에게는 지혜도 없고 용감하지도 않으며''', 게다가 사졸들은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또 천 리를 걸어왔으므로 병사와 말은 피곤한 상태이오." 주환은 일부러 깃발을 쓰러트리고 북을 울리지 않은 채 자신의 병력이 허약해 보임으로써 조인군을 유인한다. 조인은 전투시 병력을 1만은 자신이 이끌고 후방에 있었고 남은 병력을 둘로 나눠 조인의 아들 [[조태]]에겐 ~~군사 경험 쌓으라고~~ 유수성을 공격하도록 했으며, 장군 [[상조(삼국지)|상조]]에겐 제갈건과 [[왕쌍]] 등을 지휘하여 따로 강을 건너 오군의 병사들의 가족이 머물고 있는 중주를 습격하게 한다. 그리고 조태 등은 후방에서 막도록 했다. 주환 등은 직접 조태에게 항거해 조태의 군영을 불태워 퇴각하도록 했다. 별도로 상조 등을 공격하였고 상조를 죽이고 [[왕쌍]]을 사로잡아 무창으로 보냈다. 이 싸움에서 머리를 베이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는 1천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주환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