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주체사상 (문단 편집) ===== 김일성의 황장엽 비판 ===== 김일성은 1967년 5월 25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제에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김영주와 황장엽의 두 대립된 이론을 모두 씹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내심 더욱 우려한 것은 논문 말미의 '인텔리 역할론'이었다. 그는 당 연설 말미에서 >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급투쟁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되면서 형식이 바뀔 뿐이다. 지금 일부 인텔리들은 자유 운운하며 당 생활을 비롯한 조직 생활 강화에 비협조적이고 잘 참여하질 않는다. 당 간부도 그렇고 '''이런 애들이 당 정책을 잘 어기고 그런다'''. 인텔리는 늙은이든 젊은이든 자유주의와 부르조아 사상을 없애고 혁명가로 단련되기 위해 당 조직 생활 등 여러 조직 생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 '당 정책을 잘 어기는 인텔리'는 황장엽을 지칭한 것이었는데 결국 이 5.25 교시 이후 황장엽은 각종 비판에 시달렸고 서기실 동료를 비롯해 그와 이론을 같이한 이들과 함께 모조리 쫓겨났다. 황장엽은 회고록에서 '이는 중국 문화혁명을 모방해 민주주의적 인텔리를 압박하려는 의도'였다고 밝혔으며 김영주의 논문이 김일성의 연설의 도마에 함께 오른 것은 김일성의 권위를 더욱 세우고 자신은 더 신임을 얻으려던 [[김정일]]의 의도였다고 본다.[* 이때부터 주체사상의 가장 큰 특징인 [[반지성주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독재는 독창적인 사고와 학술활동에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지식인(인텔리)를 억압하는 반지성주의에서 출발한다. 그래야 독재를 합리화할 수 있으니까.] 웃긴 것은 이 시기 소련에서는 계급투쟁의 종말(전인민국가의 도래)을 주장했던 흐루쇼프마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포드고르니-코시긴 3두체제가 확립된 뒤였으며, 사회주의 사회 내 계급투쟁은 50년대 중반에 스탈린 격하운동과 함께 비판되었던 이야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