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전충 (문단 편집) === 청년기 === 하지만 주온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하라는 농사는 안 하고]] 학문과 무예에 흥미를 보였다. 장성했을 때, 멸망 직전의 부패한 [[당(통일왕조)|당]] 정권에 불만을 품은 [[황소(당나라)|황소]]가 대대적으로 [[황소의 난|난을 일으키자]] 형과 함께 참전, 그 밑에서 두각을 세웠다. 880년 황소는 파죽지세로 중앙정부군을 물리쳤고, 이에 놀란 [[황제]] [[당희종|희종]]은 [[촉]]([[쓰촨 성|사천]]) 지방으로 달아났다. 황소는 [[시안(도시)|장안]]을 함락시키고, 국호를 '[[제나라#s-8|대제]]'라 정하며 제위에 오른다. 하지만 [[오합지졸]]들을 끌어모은 정권이 오래 갈 수는 없는 일. 곧 당 왕조에 충성하는 [[사타족]][* [[튀르크]]계인 [[돌궐]]족의 일파.] 출신 [[독안룡]] [[이극용]]이 군대를 이끌고와 장안을 공격한다. 더욱이 처음부터 황소는 인망이 있었던 주온을 경계하고 있었다. 당연히 주온도 이를 알아채고 있었다. 이무렵 촉에 있던 당나라 장군 왕중영이 주온에게 밀사를 파견하였고, 이를 계기로 평소 교활하고 야심이 있던 주온은 왕중영과 내통하게 되었다. 그 후 주온은 장안에서 황소를 배신하고 반군을 격퇴하여 몰아내었다. 이 전공으로 주온에게는 왕중영은 물론 당나라로부터 사례가 내려졌다. 그리고 황소는 장안을 버리고 도주한 후 [[산동]]의 태산 부근에서 자결하였다. 당나라 조정은 주온을 양왕(梁王)에 봉하고, 좌금오위대장군-하중행영부초토사의 지위와 함께,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당나라에게 충성하라]]'''는 의미가 있는 '''[[최충헌|전충]]'''(全忠)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이후 그는 당의 장수로서 주전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