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윤발 (문단 편집) === 할리우드 진출기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 미국으로 먼저 진출한 절친 오우삼 감독[* [[장 클로드 반담]]이 주연한 <[[하드 타겟|하드 타깃]]>으로 1993년 진출했다.]의 요청으로 1998년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란 액션 느와르 영화에 출연해 헐리우드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데, 아무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지라 과묵한 킬러 모습으로 등장해서 연기폭이 줄어든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그 후 1999년 [[왕과 나|애나 앤드 킹]], [[커럽터(영화)|커럽터]]에 출연했지만 큰 히트는 못쳤다. 주윤발이 서구권에서도 인지도를 높인건 2000년 개봉한 영화 [[와호장룡]]이 북미권에서 대히트하면서부터였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제작했지만 [[표준중국어]] 영화라[* 그런데 사실 표준중국어도 주윤발의 모어는 아니다.] 그래도 주윤발 입장에선 영어보단 대사 처리가 쉬웠고, 평소 무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본인의 연기력으로 커버해[* 검술 동작이 어설펐기에 액션 동작에서 뒷짐을 지고 한손으로 검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되레 배우의 연기력과 싱크로되어 정말 최고의 검술 달인처럼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은둔 강호고수 이모백(리무바이) 역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할리우드는 이런 무림고수 이미지를 써먹으려고 했든지, 이후 [[방탄승]]에 캐스팅 했으나, 역시 [[영어]] 연기의 한계를 드러내며 망작이 되었다. --[[지못미]]-- 그리고 이후부턴 [[캐리비안의 해적]], [[드래곤볼 에볼루션]] 등의 영화에서 조연을 주로 맡으며 헐리웃 영화 속에서 역할 비중이 확 줄게 되었다. 사실 주윤발의 이런 굴곡은 1997년 중국 귀속을 앞두고 홍콩을 떠나 할리우드 진출을 모색했던 대부분의 홍콩영화인들이 겪은 일이다. 홍콩에서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유명한 영화인들인데, 할리우드에서는 이방인이라 기반이 없던 데다 영어라는 언어적 한계까지 겹쳐 알게 모르게 차별대우를 받거나 틀에 박힌 역할만 맡게 됐던 것. 그래서 1997년을 전후하여 해외로 이주했거나 진출했던 많은 감독, 배우들이 2000년대 중반 들어선 다시 홍콩으로 되돌아오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