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윤발 (문단 편집) === 전성기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 >그는 따뜻한 마음씨와 현대적인 기사도의[* 협객이라 번역한 이도 있다.] 풍모를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 >-주윤발과의 첫 만남에 대한 [[오우삼]]의 회고 주로 드라마판에서 활동하던 주윤발이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건 [[오우삼]] 감독과의 만남이 주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영웅본색]] 촬영을 위해 마크 역의 배우를 물색하던 오우삼 감독은 어느날 지역신문을 보다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주윤발의 기사를 읽게 되었고 그를 만나보기로 한다. 그리고 오우삼은 주윤발과의 첫 대면에서 '따뜻한 마음씨와 현대에 잃어버린 의협과 기사도의 풍모가 느껴지는 사람이다.'라고 느껴 캐스팅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1986년 개봉한 영웅본색은 주윤발을 내수용 스타에서 단숨에 아시아의 스타로 발돋움시켰다.[* 사실 영웅본색에서 그는 정확히 말하면 주연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 스토리상의 진짜 주연은 [[적룡(배우)|적룡]]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윤발은 [[의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연연하지 않는 비장한 카리스마를 보여줘 홍콩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홍콩 느와르 풍의 도시적 유혈액션이 강조되는 이 영화에서 그는 이후 '[[마지막 보이스카웃]]', '[[매트릭스]]' 등 많은 헐리웃 영화에서 패러디하게 되는 멋진 쌍권총 액션을 보여주었고, 한국에서 [[썬글라스]]와 바바리 코트의 느와르식 패션과 담배 대신 [[성냥]]개비를 씹는 특유의 모습을 크게 유행시켰다. 여담으로 주윤발은 사실 총기를 싫어한다고 밝힌 바 있는 평화주의자다. 이후 영웅본색의 속편들을 비롯해서 많은 느와르 영화와 [[도신]] 시리즈 등 도박물, 멜로, 휴먼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등 여러 장르의 영화에 다작으로 출연하였는데, 느와르식의 고독한 킬러 [[Badass]] 분위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풍부한 표정과 유머러스한 입담을 가지고 있는 연기파 배우로 '대장부일기', '장단각지연', '공자다정' 같은 영화에서는 코미디 역할도 굉장히 잘 소화해낸다. 또한 악역에도 도전했는데, 1985년작 드라마 '충열전기 양가장'[* 주윤발 외에도 양조위, 유덕화 등이 출연한 초호화 캐스팅으로 유명했다.]에서 자존심 때문에 [[송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 신선 여동빈 역을, 1987년작 영화 소생몽경혼(국내 개봉명은 몽경영웅)에서는 처절할 정도로 찌질한 부패경찰 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최전성기인 1980년대 말 주윤발은 '''매년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그야말로 몸이 남아날까 싶을 정도의 다작을 했는데[* 단순 계산으론 약 1달에 1편꼴로 영화를 찍은 셈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미지 소비를 불러오기도 했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홍콩 반환을 앞두고 일종의 허무주의를 반영한 도박물이 대거 나왔는데, 주윤발도 도신 등 여러 편에 출연하며 여전히 기세를 이어갔다. 이런 다작은 주윤발의 인기와 더불어 의리있는 그의 성격상 무명 시절 도움 받은 감독과 제작자들의 출연 제의를 잘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었고, 한편으론 당시 홍콩 영화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삼합회 등의 조폭 계열 일부 회사들이 배우의 이미지 소비를 딱히 고려하지 않고 돈만 벌면 장땡식으로 아류작을 남발한 사정도 있었다.[* 다만 덕분에 오늘날 와선 주윤발 리즈 시절 작품이 많긴 해서 팬들 입장에선 볼거리가 많은 장점도 되긴 한다. 물론 작품성이 많이 낮다면 과유불급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이는 결국 1997년 홍콩 반환으로 인한 인재 유출 등과 겹쳐 홍콩 영화계 전체의 쇠락으로 귀결되는 한 원인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