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안동 (문단 편집) == 역사 == 관할 법정동은 주안동이다. 주안이라는 이름은 붉은 빛을 띤 만월산의 서쪽 아래를 붉은 언덕, 주안([[朱]][[岸]])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실제로 조선 후기의 주안면은 현재의 남동구 간석동, 남동구 구월동, 부평구 십정동 및 주안동 석바위 일대를 관할하는 지역이었다. 1908년 대한제국에서 십정리(현 십정동) 일대에 제염시험장을 설치하였으며, 이듬해 주안염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1909년부터 1918년까지 주안염전을 확장하면서 소금의 운송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하여 1910년 10월 십정리에서 서쪽 1km 즈음이던 충훈부리에 경인선 철도의 역을 설치하고 이 역을 [[주안역]]으로 명명하면서 주안이라는 이름이 지칭하는 지역이 현재의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비슷한 사례가 인천에도 또 있는데 [[부평]]이라고 지칭되는 지역의 이동이다. 조선시대 부평도호부의 중심은 오늘날의 [[계양구]] [[계산동(계양구)|계산동]] 일대였으나 구한말 경인선 철도를 부설하는 과정에서 부평군 동소정면 대정리 쪽에 [[부평역]]을 설치하면서 이후 부평이라는 지명이 부평역 일대를 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주안동은 조선시대까지의 '주안'(朱雁)과는 좀 다르다. 원래의 주안(朱雁)은 옛 인천도호부 주안면, 지금의 부평구 십정동, 남동구 간석동/구월동 일대를 가리키던 말이었다. 지금의 주안(朱安)은 옛 인천도호부 다소면 충훈부리, 사미리[* 1914년에 부천군 다주면 사충리로 통합됨]를 중심으로 부내면(구읍면) 관교리 일부(지금의 주안7동 남부, 주안8동 서남부)와 승기리 일부(지금의 주안8동 동북부), 그리고 주안면 간석리 일부가 주안동으로 편입된 곳이다. 충훈부리는 지금의 구 시민회관 사거리 부근, 사미리는 지금의 주안7동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6년에 주안동으로 개칭하였고, 1968년 구제 실시로 [[경기도]] [[인천광역시|인천시]] [[미추홀구|남구]] 주안동으로 변경되면서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 이르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