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회 (문단 편집) === 사후 === 종회는 원래 형 종육의 아들들을 키웠는데 형의 아들인 [[종옹]]은 종회의 반란을 수행하다가 함께 죽었다. 결국 종회는 반역을 저질렀기에 일가가 모두 죽어야 했고 형의 아들 [[종의]] 및 [[종준#s-2]], [[종천#s-1]] 등은 하옥되었으며 당연히 참수되어야만 했다. 사마소는 형식상으로 황제 [[조환]]에게 이를 상주했고 조환은 조서를 내렸다. 비록 종회의 죄는 크지만 아버지 종요는 세 조씨([[조조]], [[조비]], [[조예]])의 시대에 최고의 직위인 태사에 임명되었다. 또 그의 형 종육은 국사를 처리하는데 공적이 있었고 무엇보다 종육이 살아있을때 동생 종회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중용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어서 그걸 보아 종준과 종천은 용서하고 관직과 작위를 그대로 하게 했다. 그러나 종회를 따라 수행했던 종의와 종웅의 자손은 멸족되었다. 이것은 [[공손강]]의 아들 [[공손황]]과 [[공손연]]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한데 결과는 정반대다. 공손강이 죽은 후에 공손강의 아우이자 공손연의 숙부였던 [[공손공]]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무능한 데다가 고자이기까지 한 공손공을 밀어내고 공손연이 찬탈했는데, 공손연의 형이었던 공손황은 당시 공손공에 의해 221년부터 낙양에 인질로 있었다. 공손황은 공손연이 장차 공손씨 일가를 망칠 것을 예감하고 당시 조예에게 공손연이 모반을 꾀하고 있으니 처리하라고 상주했지만 묵살당했다. 결국 237년 공손연이 난을 일으켰고 조예는 고유의 상소에도 불과하고 공손황과 그 일가를 죽였다. 결국 공손연도 토벌되어 멸족당함으로써 공손황의 예감은 적중했다. 다만 공손씨 일가는 종회 일가와는 다르게 [[요동 공손씨 정권|사실상의 독립 국가]]였으므로, 타 세력 [[인질|볼모]]의 특성 상 할 수 없이 죽였을 가능성이 높다. 안 그러면 타세력이나 이민족들로부터 볼모를 잡는 행위가 무용해지니 일종의 본보기인 셈. 한진춘추에 따르면 종회의 공조 [[상웅]]이 종회를 거두어 장사 지내주자 사마소가 상웅을 불러 책망했는데 상웅이 옳은 말을 하자 도로 보내주었다. 종회가 죽은 이후, 종회의 집에서 도론(道論)이라는 서적 20편을 얻었는데, 실제로는 형명가의 저작이었고 글이 종회가 쓴 것과 비슷했다. 장화열전에 따르면 [[풍담]]은 [[사마염]]에게 "사마소가 한계가 있는 종회를 우대해서 종회가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품었다."고 말했다. [[수신기]]에 따르면 상제가 세 장군 [[조공명]], 종사계(종회) 등으로써 각자 귀신들을 감독하여 사람들을 잡아가도록 하였다.[* 즉 죽은 뒤 저승사자가 되었다고 민간에 알려진 종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