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회 (문단 편집) === 종회·강유의 난 === 여기서 끝내면 좋았지만 종회는 은밀히 사마소에게 역심을 품고 있었고 강유는 촉을 부흥시키려 했기 때문에 둘이 의기투합을 한다. 이 당시 종회는 은근한 야심을 품고 촉한의 인사들과 교분을 쌓으려 했는데 강유는 이점을 파악하고 종회에게 접근해 그의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강유를 좋아했던지 검각농성 당시에 그에게 편지를 보낸적도 있었고 항복한 강유의 태도를 보고 높게 사기도 했고, 자기 수레에 같이 태우고 다니며 중원 최고의 명사들인 [[하후현]]과 [[제갈탄]]보다도 높이 평가했다.][* 거기에 종회는 촉을 정벌할 때 제갈량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며 그에게 경외를 표했다는 기록까지 있는 걸로 보아, 종회는 아무래도 한 세대 전 자신의 나라를 위협한 최대의 국적과 그의 후계자격인 강유에 대해 여러가지로 의식하고 있었던듯.] 종회는 결국 등애를 모함하여[* 세어에 따르면 종회가 다른 사람의 글씨체 모방을 잘해서 검각에서 등애에게 오고가는 편지를 가로채 등애의 편지는 불손하고 교만하게 만들고, 사마소의 답서도 손을 댔다. 이후 등애가 모반할 조짐이 있다는 상소를 올렸다.] 본국으로 송환시켰다.[* 종회의 난이 진압된 후에 등애는 누명을 벗고 풀려나는 듯했으나, 평소에 등애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위관#s-3|위관]]과 [[전속#s-2|전속]]에 의해 살해당한다.] 종회전에 따르면 이때 가호군(가충)이 사마소에게 "종회를 약간 의심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사마소는 "지금 그대를 파견해 일을 시키는데 그대 또한 의심할 수 있겠소?"라 답하자 가충은 아무말 못했다. 종회가 등애를 모함하는 상소를 올리자 사마소는 서촉으로 가려했는데, 소제가 "종회의 군사가 등애보다 훨 많으니 그냥 종회에게 등애를 체포하도록 명령만 내리시면 되지 직접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라 말하자 사마소는 "그대는 지난번에 종회를 의심했으면서 나보고 출병하지 말라니, 등애가 내게 불충하기 전에 내가 등애를 의심할 수 없으니, 내가 장안에 도착하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오."라 답했다. 유일한 꺼림거리 등애가 없어지니 살판난 종회는 강유와 모반 작전을 구상하나, 사마소가 편지를 보내길 먼저 가충을 보내고 사마소는 이어서 10만 대군을 이끌고 장안에 와 있는 상태라고 하자 종회는 당황하여 장안 공격 계획은 포기한다. 사실 [[신헌영]]을 비롯해 이미 그의 행동에게 역심을 읽은 사람은 많았고 사마소의 부인 [[왕원희]]를 비롯해 사마소에게 그의 야심을 간언한 이도 많았으며 사마소 자신도 종회의 재주만 높게 샀을 뿐이지 그가 언젠가는 배반하리라는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만큼 그가 위나라에서부터 그런 쪽으로 야심을 풀풀 풍기던 인물이라는 점은 사실인 듯하다. 결국 종회는 속전속결을 단행하고 측근에게 '''잘되면 천하(天下)를 얻을 것이오, 못 돼도 서촉(西蜀)으로 물러나 지킨다면 [[유비]](劉備)처럼 될 것이외다.'''라 말한다.[* 이 발언은 혜강에 대한 와룡발언, 제갈량 사당-장완 묘 참배 등과 함께, 종회가 유비와 제갈량이 세운 촉한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적국의 수괴(?) 제갈량의 사당에 굳이 참배를 하고 그 묘를 함부로 건들지 못하게 하며 제갈량의 후계자인 장완의 아들 장빈에게 편지 보내서는 '나도 제갈첨이나 당신처럼 같은 천지의 기를 받았다, 우리는 사실상 동류'라는 드립을 치는가 하면 강유에게는 끝없이 구애(?)의 메시지를 보냈다. 만약 종회가 강유를 제갈량의 총애를 받던 후계자 위치로 보아서 ''''강유=제갈량'의 보좌를 받는 나는 유비와도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 '나도 유비처럼 될 것이다' 발언이나 강유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신뢰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역사상 최초의 [[촉빠]]--] 이에 종회는 264년 정월 15일에 성도에 도착해 옛 촉의 관리들을 초청해 태후([[명원황후]])의 상을 당했고 태후가 남긴 조서를 거짓으로 만들어 종회에게 병사를 일으켜 사마소를 폐하도록 했다고 알려 반란군을 조성한다. 강유전 주석 화양국지에 따르면 강유는 종회에게 먼저 위나라 장수들을 죽이도록 가르쳤고, 그 뒤 종회를 천천히 죽이고 위나라 병사들을 파묻어버릴것을 계획해 은밀히 유선에게 서신을 보내 말했다. "원컨대 폐하께서 며칠 동안만 모욕을 참으시면 신이 위태로운 사직을 다시 안전하게 하고, 빛을 잃은 해와 달이 다시 밝게 빛나도록 하겠습니다." 종회는 강유의 말을 들어 위나라 제장들을 다 죽이겠다고 [[호열]] 등을 가두고 엄중히 지키게했다. 종회는 [[위관]]은 남기겠다고 널빤지에 글을 써 "호열 등을 죽이고자 하오."라 위관에게 보였지만 위관은 허락하지 않았다. 위관과 종회는 이로인해 불신하고 위관은 군대에 종회에 대해 널리 말하게했다. 한편 종회의 측근 [[구건]]은[* 구건은 본래 호열의 부하였는데, 호열이 그를 사마소에게 추천하였고, 종회는 사마소에게 [[구건]]이 자기를 따르게 해달라고 정하여 그를 매우 신임하고 아꼈다. 상식적으로 호열을 감금한 시점에서 호열이 추천한 구건 역시 의심이 대상이 되어 구금되어야 하건만, 이 때 종회는 이미 그럴 만한 정신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열이 혼자 구금된 것을 불쌍히 여기고 종회를 만나서 친병을 안으로 들여보내 음식을 나르게 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호열의 친병들이 감금된 호열에게 드나들게 되자 호열은 그의 친병에게 말하여 아들([[호연]])에게 종회가 위나라 장수들을 다 죽이려한다는 편지를 보냈고 이 말은 전원에게 퍼졌다. 어떤 사람이 종회에게 "아문기독 이상을 전부 죽여야 합니다."라 말하나 종회는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강유전을 보면 위장들을 죽이고 위군을 습격하는 이런 일을 옆에서 조언한게 강유라는 뉘앙스가 보이며 [[자치통감]]에선 위나라의 제장들을 죽이라고 말한 사람이 강유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시기 그는 일을 결단하지 못하고 망설이면서 스스로 화를 재촉하였다. 지금까지 종회는 거짓으로 죽은 곽태후([[명원황후]])가 남긴 조서를 만들어 반란을 일으키고 반대하는 부하 장수를 모두 감금하는데 까진 성공했지만, 그 이상은 본인의 결단력 문제로 진행시키지 못했다. 그 사이, 18일 정오가 되자 감금당한 [[호열]]의 병사와 아들 [[호연(삼국지)|호연]]이 군사를 이끌고 아버지를 구하러 쳐들어왔다. 종회는 놀라고 당혹해하면서 강유에게 말했다. "이 병사들이 와서 나쁜 행동을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오?" 강유가 말했다. "오직 마땅히 공격할 뿐이오!" 종회는 그제서야 병사를 파견하여 어지러이 싸웠다. 강유는 종회의 의병을 이끌고 싸워 대여섯 명을 직접 죽였다. 병사들은 강유와 결투하여 죽이고 다투어 달려가서 종회를 죽였다. 종회는 당시 마흔 살이었고, 수백 명의 장수들이 살해되었다. 그리고 종회의 모함으로 호송되던 등애 역시 후환을 두려워한 위관과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전속에게 아들과 함께 살해당하고 일족이 화를 입었다. 사실 이 대목에서 종회의 행동은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 강유에게 푹 빠져서 군권이고 뭐고 다 돌려주고 강유의 제안대로 위장들을 죄다 죽이려는 모습은 강유에 대한 신뢰가 커서라고 퉁치기엔 지나친 부분이다. 위군이 쳐들어오는 상황에서조차 종회는 스스로 뭔가 하려는 모습 대신 놀라서 강유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매달리기만 했다. 오죽했으면 [[배송지]]가 '종회는 위장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버리고 강유에게 대군을 주어 선봉으로 삼고자 하였다. 만약 위장들이 모두 죽고 병사가 강유의 손에 주어졌다면 종회를 죽이고 촉을 회복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라고까지 평했다. 한편 삼국지집해의 지은이인 노필(盧弼)은 , "종회가 강유를 임용한 것은 그가 사마씨(司馬氏)의 일당이 아닌데다 망국의 장수로서 그 재주가 또한 임용할만 했기 때문이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사실 간단히 종회가 '야망에 비해 능력이 부족했다'고 보면 설명이 되긴 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유비처럼 천하를 도모해보고, 안되면 서촉에 만족해 익주에 기반한 지배자가 되려고 했다. 다만 그의 능력이 현저히 부족해 강유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렇기에 그에게 전권을 주고 따르다가 일이 틀어지니 별 도리없이 망한 것.] 사마소가 이끈 대군이 장안에 도착했을 때 종회의 난은 과연 실패로 끝나 종회는 이미 죽었고, 모든 것이 사마소가 예상했던 것과 같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