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회 (문단 편집) === 견제질 === 종회는 당시 비록 지방 관리였지만 정치적으로 크게 관여했다. [[배수(삼국지)|배수]]나 [[양호(삼국지)|양호]]를 견제하면서 사마소의 신임을 얻고자 하였고, [[죽림칠현#s-1]]으로 꼽히던 [[완적]]이나 [[혜강]]을 모해하고자 하였다. 당시 유행하던 현학(玄學)에도 관심이 많으면서 죽림칠현의 필두이자 당시 현학의 권위자였던 명사 혜강과 친교를 쌓고자 했다. 부하전에 따르면 종회는 [[부하(삼국지)|부하]]의 관점을 종합하여 사본론(四本論)을 지었고, 《[[세설신어]]》에 따르면 사본론의 집필을 끝내고 혜강에게 보여주려고 했다가 그의 비판이 두려워 품 속에서 감히 꺼내지 못하고 창문 밖까지 던져 놓고 곧장 돌아서서 도망갔다고 한다. 나중에 사마씨에 붙어 출세한 다음에는 뛰어난 명사들의 행렬을 거느린 채 호화로운 복장으로 혜강을 찾았으나 혜강은 철 단련에만 열중하고 종회를 한참 무시한다. 위씨춘추에 따르면 종회가 떠나려하자 >혜강이 종회에게 물었다. >"무엇을 듣고 왔으며 무엇을 보고 가시는가?" >종회가 말했다. >"들은 바가 있어 왔고 본 바가 있어 갑니다." >종회는 그를 깊이 원망하였다. 위 제후 왕실의 사위이기도 하면서 사마씨 일족의 전횡을 미워하던 혜강으로서는 사마씨에 붙은 종회를 좋아할 수 없었으며, 결국 혜강은 찾아온 종회를 푸대접해 돌려보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종회는 혜강을 죽이려 마음먹고, 기회를 노려 사마소를 설득해 혜강을 사형에 처하게 한다. 이때 한 말이 걸작인데 '''[[http://beatles9.egloos.com/5788018|"혜강은 와룡이니, 놔둬서는 안됩니다."]]''' 당장 [[사마의|사마소의 아버지]]가 [[제갈량|누구]]랑 대적했나를 생각해보면 이보다 탁월한 모함의 한마디도 없었을 것이다. 사마의도 제갈량을 높이 평가한바 있지만 개인적인 평가였다. 제갈량이 공적으로도 국적을 초월해 위인으로 대접받는건 촉한이 사라진 사마염 시대 이후의 일이었다. 촉과 수시로 교전을 벌이던 이 때 제갈량은 당연히 '대마왕' 취급이었다. 이때 혜강의 명성에 흠을 내는 음모를 꾸며 이를 구실로 삼았으며, 혜강이 사망한 이후 죽림칠현은 [[완적]]처럼 현실도피적 음주, [[상수(삼국지)|상수]]처럼 그럭저럭 관리로서의 삶, [[왕융]]처럼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경우, [[산도(서진)|산도]]의 경우처럼 고관을 지내는 등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사마씨에 저항하는 세력이 남지 않게 되었다. 어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종사계(종회)가 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 글을 한 장 썼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완보병([[완적]])의 글이라고 하면서 글자마다 모두 뜻이 살아 있다고 하더니, 그것이 내가 쓴 것임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더군." 세설신어에 따르면 종회가 왕융,배해를 평한 기록이 있다. >종사계(종회)가 왕안풍([[왕융]])을 이렇게 평하였다. >"아융(왕융)은 남의 속마음을 분명하게 알아낸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다. >"배령공([[배해]])은 종일토록 현담을 해도 다함이 없다." >그때 마침 이부랑의 자리가 결원이 생기자 사마소가 종회에게 어떤 인물이 적임이냐고 묻자, 종회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배해는 맑고 사리에 정통하고, 왕융은 대범하면서도 요령이 있다하여 둘 다 적임자입니다.' >이에 사마소는 배해와 왕융을 등용하였다. 문명왕황후열전에 따르면 [[왕원희]]는 사마소에게 종회를 중용하지 말라고 조언했고, 양호열전에 따르면 종회가 총애를 받으면서 양호를 시기해서 양호가 그를 아주 두려워했다. 종회의 이복형 [[종육]]은 사마소에게 "종회는 책략에 의지하여 뜻밖의 것을 지키기는 어려우므로 중요한 직책에 위임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한진춘추에 따르면 사마소는 그 충량을 가상하게 여겨 웃으며 종육에게 답했다. "만약 경의 말과 같다면 반드시 종족에게 미치지 않을 것이다."[* 사마소의 이 말은 "네 말이 맞다면 네가 종회 때문에 피해 입을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종육은 이 말을 했던 덕분에 나중에 종회가 반란을 일으켰음에도 [[연좌제]]에서 용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