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회 (문단 편집) === 사마씨의 측근으로 === [[고평릉 사변]]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정변 당시 종회는 중서랑 신분으로 조방, 조상 등을 따라 고평릉에 가 있었다. 이 때문에 [[유방(삼국지)|유방]], [[위관]], [[하후화]] 등의 집안이 종회의 어머니 [[장창포]]에게 찾아와 지금 아들이 난리에 휘말렸는데 걱정되지 않냐고 물었으나, 장창포는 차분하게 조상의 실책과 사마의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한편 종회는 황제 곁에 머무르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며 사태가 신속하게, 큰 피를 보지 않고 해결될 것임을 예측했다.[* 이건 종회 본인이 저술한 종회모전에서 나온 기록으로 종회 스스로는 '우리 엄마가 이렇게 잘났어'라며 기록해 놓은 모양이다.] 고평릉 사변 이후 하안이 처형당하자 사마씨에 접근하여 재능을 발휘했다. 이렇게 유연하지만 신의없던 태도는 그의 신망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진춘추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당초 [[하후패]]가 촉에 항복하였을 때 [[강유]]가 물어 말했다. >"사마의가 이미 그곳의 정권을 얻었으니 응당 다시 정벌하고자 하는 뜻이 있는가?" >하후패가 말했다. >"그 쪽은 가문을 경영하고 세우느라 바깥일에 신경쓸 수 없습니다. 종사계(종회)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됨이 비록 어려도 끝내 오, 촉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다만 비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를 쓸 수 없습니다." >15년 후에 종회는 마침내 촉을 멸망 시켰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하후패가 종회와 더불어 등애도 언급하는 것으로 각색했다. 종회는 [[우송]]이 상소를 짓는걸 도왔고 사마사가 그 상소를 종회가 한 걸 알자 종회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그의 재능을 감탄했다. 허윤전에 따르면 [[허윤]]이 죽자 사마사가 종회를 시켜 허윤의 아들들을 살피게했는데 [[완씨]]의 대처로 허윤의 아들들은 무사했다. 조모전 주석 위씨춘추에 따르면 사마사는 조모가 즉위하자 종회에게 그에 대해 물었다. >사마사가 사사로이 물었다. >"임금(조모)은 어떤 군주였는가?" >종회가 대답했다. >"재능은 진사왕([[조식(삼국지)|조식]])과 같고, 무용은 태조(조조)와 비슷합니다." >사마사가 말했다. >"만약 경의 말과 같으면 사직의 복이다." 조모전 주석 진제공찬에 따르면 조모는 항상 [[사마망]], [[왕침]], [[배수]], 종회 등과 모여 토론회를 가졌다. [[관구검]]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사]]에게 반란을 진압하는 작전을 진언해 신임을 얻었다. 부하전에 따르면 종회는 관구검을 토벌하여 오만해지자 부하가 그에게 신중하라고 충고했다. [[문흠]]과 관구검의 난을 진압하려던 사마사가 죽고 사마소가 그 뒤를 이어 군을 통솔했는데, 낙양의 [[조모#s-2|조모]]는 군을 수도 밖에 두고 궁으로 입궐하는 것을 명령하였으나, 종회는 [[부하(삼국지)|부하]]와 상의해 부하로 하여금 표를 올리도록 하고 사마소와 함께 낙양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조모는 사마소에게 사마사가 가졌던 모든 직위를 그대로 물려주게 된다. 종회는 황문시랑으로 승진하고 무정후로 봉해져 식읍 3백 호를 받았다. 이쯤 종회의 어머니 [[장창포]]가 죽어 상을 치루었고, 위씨춘추에 따르면 종회가 어머니를 위해 종회모전을 지었다. 257년, 제갈탄이 사공이 되자 당시 관직에서 물러나 집에서 상을 치르고 있던 종회는 제갈탄이 반역할 것이라 추측하고 사마소에게 제갈탄의 임명을 취소하라 아뢰었지만, 사마소는 이미 제갈탄의 임명이 끝났으니 돌이킬 수 없었다.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켜 양주자사 [[악침]]을 죽이고 [[오(삼국시대)|오나라]]에 구원을 청하자, 오에서는 장수 [[전역(삼국지)|전역]], [[전단(삼국지)|전단]], [[당자#s-2]], [[왕조(삼국지)|왕조]] 등과 병사 3만 명을 보냈다. 그러나 이때 건업에서는 전씨 가문 내에서 싸움이 일어나 서로 소송을 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어 전역의 형의 아들 [[전의#s-2|전휘]]와 [[전의#s-3]]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마소에게 투항한다. 종회는 이것을 이용해 전휘와 전의가 보낸 것처럼 서신을 꾸며 [[손침]]이 수춘에서 이기지 못한 것에 크게 화가 나서 전씨 일가를 모조리 죽이려한다면서 성 안의 전씨 일가도 항복해 화를 면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그 편지에 속아 전역은 조카 전정 형제 다섯 명과 함께 병사 수천 명을 이끌고 동문으로 나와 사마소에게 투항했다. 그들 모두 작위에 봉해지고 총애를 받자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수춘성을 함락시키는데 종회의 계책이 큰 몫을 해 사마소는 날이 갈수록 종회를 더욱 후하게 대접하고 중요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