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회 (문단 편집) === 동성애자? === 소수의 마니아 중심으로 반 장난식의 [[게이]]설이 제기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저 낭설로 치부하기엔 상당한 근거를 갖춘 견해인데, 일단 중년의 나이에 처자를 뒀다는 기록이 일절 없다. 종회는 역모죄로 죽었으니 보통 같으면 '삼족을 멸했다'는 일반인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서술이 뒤에 붙어야 한다. 그러나 종회의 경우, 맡아 기르던 조카들에 대한 처분만이 거론될 뿐이다. 서술이 아예 없으면 그냥 일족을 멸했는데 안 적었구나 할 법한데, 조카들에 대한 처분은 적어두었으면서도 처자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진짜로 '자식'과 '처가'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는 21세기 현재보다 결혼 연령이 훨씬 낮았고 지체 높은 집안 자식이라 혼담도 많이 들어왔을 게 분명한지라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다.[* 정사 삼국지 종회전에서 종회가 촉을 멸망시킨 후 치하하는 조서 내용 '종회에게 식읍 1만호를 더함과 더불어 아들 2명을 정후로 봉하고 각기 식읍 1000호씩을 주었다'을 바탕으로 종회에게 자식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오역으로 '아들 2명'은 종회가 아니라 등애의 아들이다.] 다만, 종회 본인도 매우 특이하게 태어나긴 했다. 그 아버지인 [[종요]]의 나이가 70살이 넘어간 이후에 태어난 게 종회라서 종요가 천수를 모두 누리고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요가 사망했을 때의 종회의 나이가 불과 6살에 지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게다가 당시는 21세기와는 달리 '인권'이라는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시대였던지라 원한다면 어디 [[오랑캐]] 진영에 쳐들어가서 여자 하나 잡아다가 결혼해도 되는 시대였고 실제로 [[하후상]]이 그랬다. 종회가 꽃미남이면서 여장 취향을 가진 [[하안]]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http://beatles9.egloos.com/5787715|세설신어]]에 따르면, 당시 종회는 옥에 갇힌 [[하후현]]에게 狎하려 했다고 한다. 狎는 허물없이 친하게 지낸다는 뜻이지만 희롱한다는 뜻도 있다. 원래 하후현과 아무 교분도 없고 16세나 연하였던 종회가, 이제 사형을 눈 앞에 둔 그를 상대로 갑자기 집적거렸다는 이야기. 하후현은 "내가 비록 형장의 길로 가는 사람이지만, 그대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종회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만약 순수하게 하후현을 존경해서 교분을 갖고자 한 것이라면 "내가 비록 죽을 사람이지만" 이라는 표현으로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희롱했다는 의미 쪽이 문맥에 맞는다. 여담으로 이때 하후현의 심문을 담당한 정위가 종회의 형 종육. 종육은 죽음 앞에 의연한 하후현의 모습에 울며 조서를 꾸몄다. 하후현 시점에서 보면 죽는 마당에 형은 눈물 쏟으며 조서 쓰고 생전 처음보는 동생은 난데없이 추파를 던지는 요상한 그림이 나온다. 촉 정벌 이후 반란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어처구니없는 행보도 강유한테 반해서 그랬다고 하면 말이 되긴 한다.[* 백약을 중원의 명사에 비교하자면 공휴나 태초도 그보다 더 뛰어나진 않을 것."이라는 종회의 평가는 발언자는 물론 논하는 대상,대조군 두 명,심지어 들어주는 사람(두예)까지 삼국시대 말기의 슈퍼스타들이라 유명한 발언이다. 다만 제갈탄과 하후현(그리고 강유)가 각각 유명한 포인트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왜 저들을 나란히? 싶은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데. 사실 하후현에 비해 좀 묻히는 감이 있다 뿐이지 제갈탄도 나름 당대의 손꼽히는 셀럽이었다. 하후현의 최고 간지 일화가 사실 제갈탄의 일화였다는 기록도 존재하고. 한편으로 제갈탄/하후현 두사람이 반사마씨 세력이었기 때문에 하필 이들을 들먹인게 종회의 역심과 관련있다는 해석도 있는데, 하후현이야 뭐 종회 본인도 확실히 껄덕대긴 했다만 제갈탄은 종회 자신이 기책을 내가며 진압에 앞장섰던 입장이라 미묘. 물론 종회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훨씬 간단한 접근법도 있다. 바로 얼평이었다는 것. 하후현이야 말할 필요가 없는 자체발광 미남이었고. 제갈탄 역시 그의 사위였던 왕광이 아내에게 '장인 어른은 그렇게 잘생겼는데 자기는 왜 이 모양임'이란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역으로 털렸다는 일화가 있는데, 아내 얼굴에 대해 장모님도 아니고 장인어른을 들먹인걸 보면 확실히 한 얼굴했던 모양. 결국 종회의 발언은 강유가 하후현 못지 않게 낭랑하고 제갈탄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기품있는 얼굴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것.][* 다만 말하는 대상이 두예라는 점에서 이 시점에서 군사 분야는 물론 이렇다할 능력을 드러낸 바 없는 그를 종회가 눈여겨 봤다는 부분이 흥미로운데... 하안 살롱 붕괴 후 왕필, 하후현, 부하까지 연달아 죽어버려 지적/철학적 교류에 대한 갈증이 심각했던 종회가 훗날의 좌전벽이자 경전 연구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길 인재인 두예를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만약 이 관점에서 접근할 경우, 문제의 발언과 얽힌 인물 중 종회, 두예, 강유 모두가 무장이지만 경서에 꽤 통달해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제갈탄이 애매하지만), 종회가 한 것이 얼평이 아니라 이런 '인텔리' 적인 동질감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때 무렵 강유는 60대 노인이라 종회와 [[오지콘|최소 20년은 나이 차이가 난다.]] 그리고 하후현도 종회에게는 상당히 연상이라는 것. 그리고 종회는 6살 때(230년) 아버지를 잃었다... 라는 게 어이 집나가게도 그 [[종요|아버지라는 사람]] 나이가 향년 79살(151년 ~ 230년). 되려 당대 기준으로 보면 엄청 장수한 거고 종회가 상식을 벗어날 정도의 늦둥이인 것이다. 무의식 중에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 줄 다른 남자를 갈구한 것일지도? 실제로 [[오지콘]] 항목을 보면, 그 성향의 사람들 중에는 아버지가 없었거나, 있었어도 아버지가 제구실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버지의 면모를 가진 연상의 남자에게 끌리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물론 단순히 인성이 덜되고 성격이 더러워서 결혼을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후현을 희롱했다는 것도 출처가 세설신어라서 신빙성이 높지는 않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이미 종회가 게이였다는 소문이 퍼져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일 수도 있다. 현대에도 부유하고 잘생긴 유명인사가 이성에 관심을 안보이면 동성애 스캔들이 도는데 권세 있으면 여자를 마음대로 취할 수 있었던 그 시절 중국에서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