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묘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시기 ==== [[1985년]] 종묘광장공원(宗廟廣場公圓)이 조성되었다. [[1988 서울 올림픽]] 준비를 위한 정리 사업이었다. 그리고 [[1991년]] 민자 유치로 종묘 지하주차장을 건설하면서 임금이 종묘에 배향할 때 쓰던 우물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80899&cid=46656&categoryId=46656|어정]](御井)이 마르고 상당한 지하 유물이 멸실되었다. 당시 관점에는 비는 공간을 실용적으로 쓰자는 목적이었겠지만, 현재 기준에서 보면 세계유산 종묘 권역에 주차장을 건설하거나 세계 유산인 태릉에 선수촌을 건설하는 것은 기겁할 노릇이다. [[2011년]] [[5월 3일]]부터 853억 원을 들여 [[2013년]] 완공을 목표로 율곡로를 지하화하여 종묘와 창경궁을 연결하기 시작했다.[[http://news.donga.com/3/all/20110503/36887987/1|#]] 2010년 10월 착공한 율곡로 구조개선 공사 과정에서 문화재인 궁궐 담장 기초석이 발견됨에 따라 원형 복원을 위해 공사가 연기되어 2014년말 [[http://infra.seoul.go.kr/archives/11537|복원 완료 예정]]이었다. 그러나 설계, 공사 방식 변경으로 [[2020년]] 12월로 연기되었다. 종묘의 정문 바로 앞에는 [[1985년]]부터 종묘광장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탑골공원]]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노인들의 쉼터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각종 집회 장소로도 자주 사용되어서 종묘 방문객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등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었다. 1985년 공원 조성 당시 부터 공연장인 국악정, 대형버스 주차장, 무료급식소 등의 시설이 중구난방으로 들어선 데다가 이동식 노래방 기계나 각종 노점상들이 등장하면서 각종 소음과 고성방가, 무료급식소로 인해 꼬이는 노숙자들[* 종묘 성역화 사업 이전까지만해도 종묘도 은근히 노숙자들이 많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어떤 풍수관련 서적에서는 종묘에서 은근슬쩍 거지들이 꼬이는 이유가 조선시대 때 종묘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거지들이 종묘를 찾아와서 동냥한 풍경에서 연원하고, 그 원인이 종묘의 풍수특성에서 파생되었다는 설도 있다.]로 난장판이었다. 종묘가 일종의 성역인 것을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었을 정도. 결국 서울시가 2007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836990|종묘광장 성역화 사업]]을 시작했다. 국악정 및 매점, 자판기 등 중구난방으로 들어선 시설을 일부 철거하고 광장 내부의 버스 주차장과 무료급식소를 외부로 이전했다. 그리고 이동식 노래방 기계나 각종 노점상등의 불법 상행위를 단속했다. 이어서 성역화 사업으로 어도, 홍살문, 하마비, 어정, 피맛길, 순라길 등의 문화재를 원형 복원 예정이며 발굴 조사 중이다. 원래 계획은 2010년경 성역화 사업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종묘 앞 발굴 조사에서 예상 이상으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29886|유물]]이 쏟아져 나와 2010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397359|발굴 조사 지역]]을 한 차례 확대하면서 2014년까지도 계속 발굴 조사 중이다. 유물 발굴로 종묘광장 정비사업은 2016년 12월까지 [[http://opengov.seoul.go.kr/sanction/4026075|계획]] 된 상태다. 2016년 3월 말 종묘전교 복원 및 제세동천 복원 및 녹지 정비를 완료한 종묘 서측 광장을 [[http://blog.daum.net/mt0047/755|개방]]했다. 이후 2016년 말까지 종묘 동측 광장을 신성림 조성 및 정비를 [[http://opengov.seoul.go.kr/sanction/7923263|진행]] 했다. 2020년 5월부터 종묘 정전이 30년 만에 보수공사를 가지면서, 2022년에 재개방을 할 예정이다.[[https://www.yna.co.kr/view/AKR20200221124800005?input=1195m|#]] 이번 공사는 2015년 안전 점검 당시에 일부에서 물이 새거나 파손이 된 부분이 많아서 전면 보수를 할 예정이다.[* 이 때, 정전 지붕의 기와를 [[숭례문]] 복원 때처럼 [[https://www.yna.co.kr/view/AKR20200223048200005?input=1195m|수제 기와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정전의 기와들은 1990년대 수리할 당시 사용했던 공장제 기와로서 이번 수리의 배경이 된 셈.] 이 때문에 정전에 모셔져 있던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가 [[2021년]] [[6월 5일]]에 [[창덕궁]] 내 [[창덕궁 선원전|구 선원전]]으로 이전하는 이안식을 거행했다.[* 이번 이안식은 [[1870년]]([[고종(조선)|고종]] 7)에 이안한 지 151년만에 치르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당시에도 종묘의 수리 때문에 진행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za_10701012_001|관련 사료 1]][[http://sillok.history.go.kr/id/kza_10703029_002|관련 사료 2]]] [[https://www.yna.co.kr/view/AKR20210604038900005?section=search|관련 기사 1]][[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240098_34936.html|관련 기사 2]] 2022년 7월 20일,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이 시작(2011년 5월)된 지 11년, 율곡로가 개통된 지 90년 만에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그 위로 8천㎡ 가량 수풀을 덮어 끊어졌던 녹지 축을 잇는 복원 공사가 완료되어 22일에 개방되었다. 새로 조성한 녹지공간엔 참나무와 소나무, 국수나무 등, 우리 고유의 나무를 심었으며 왕이 종묘를 방문할 때 이용했던 ′북신문′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위로 길이 나 있어서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 사이에는 개방되어 들어갈 수 있으며, 북신문 앞에서는 철담장 너머로 작게 창경궁이 내다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를 오가듯 창경궁과 종묘 사이도 바로 오갈 수 있도록 할 듯. 참고로 창경궁에 일제가 설치한 위락 시설을 철거하 이름도 창경원에서 창경궁으로 복원하고 공사 완료하여 재 개방 된 이후, 율곡로가 아래 있고 다리로 연결 되었던 시절에도 종묘와 창경궁이 모두 개방된 시간에 한해서 어느 쪽에서든 자유롭게 걸어서 넘어갈 수 있었다. 통로 개방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랐지만 대략 일몰 전이었으므로, 그 이후엔 종묘 또는 창경궁 안에 더 물러 있을 수는 있었다. 통로(=육교)그냥 열려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한 쪽에 철문은 있었다. 당시엔 상시 입장이었고, 입장료도 무료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