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졸업정원제 (문단 편집) == 최후 == 그러나 이 제도는 증원 모집된 학생들을 성적이 아무리 우수한 편이라도 강제로 탈락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단적인 사례로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서울대 법과대학]]에서는 B학점을 받은 학생이 탈락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학생들 간에 경쟁을 심화시켜 [[학생운동]]에 나서지 못하게 하자는 의도도 있었다.[[http://news.donga.com/Culture/more29/3/all/20080905/8627038/1|#]] 문제는 제적 방식이 졸업 시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매 학년 진급시에 하위 몇 명을 내보내는 방식이었다. 매 학년 전공과 교양, 부전공 비율과 학점도 다르고 필수와 선택 과목 배분도 다른데, 교양 필수 과목 비중이 높은 1학년때부터 실시했기 때문에 출석률이 낮다든지 기타 이유로 교양필수 과목을 이수 못 하면 전공 과목을 아무리 잘 해도 그냥 제적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졸업 전까지만 학점을 따면 되는 교양필수 과목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 또한 평점 평균이 낮아도, 석차가 하위 몇 %에 들어도, 미수료(F)가 기준 이상 되어도 짤렸는데, 인원이 많은 학과와 적은 학과는 나가야 하는 사람 수가 달랐기에 이렇게 상대 평가가 되면 학점 평균이 높아도 짤리는 현상이 일어날수 있어 불공평했다. 학점 짜게 주는 교수에게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 일단 다 다니게 한 후 대학 생활 전체를 보고 졸업시에 심사하여 졸업과 수료로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중간 중간 기준을 못 맞추면 그냥 학교에서 쫓아낸다는 거, 특히 입학 초창기에 잘 못하면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폭력적이었다. 어쨌든 간에 이 졸정제는 학부모와 대학측의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학부모들은 어렵게 진학시킨 자녀들이 대학에서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면서 그간 쏟았던 교육비용이 죄다 매몰비용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속출한지라 반발하는것이 당연했고, 대학 역시 아무리 단기적으로 정원이 늘어나더라도 장기적으로 등록금과 기부금을 얻는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서는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도 이 정책에 반대하였다. 1985년 입학정원이 대학자율에 맡겨지면서 유명무실해졌고, 1988학년도부터 입학정원제가 실시됨에 따라 완전 폐지되었다. 문교부는 대학측이 졸업정원제에 의해 탈락한 학생들을 재입학시키기 위해 학칙을 개정할 경우 전부 승인하기로 함에 따라 전원 구제하기로 하였다. 구제는 대부분 재입학 형식으로 시행되었다. 입학금을 내고 마친 학기 다음 학기로 돌아오는 식. 85년부터 유명무실해졌다고는 하나 85년 입학해서 86, 87년에도 제적된 인원이 있으며, 88년 이전까지 이 제도는 분명 존재했다. 남학생들은 제적되면 대학생 신분이 아니라 입영 연기가 안 되기 때문에 타 대학을 입시 다시 보고 들어가든지, 편입을 받아주는 2년제 전문 대학, 지방대 등 다니던 데보다 한 단계 낮은 데로 들어가 병역을 피해야 했다. 물론 등록금이 없거나 나이가 많아서 그냥 군대로 가 버리는 인원도 있는데, 제대하기 전에 이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제대 복학생과 함께 재입학으로 돌아오게 된 경우도 많다. 하여간 남학생들은 군복무 때문에 일정 인원은 항상 비어 있어서 졸업정원제가 있었어도 그들이 학교로 돌아오기 전까지 제도가 폐기된 바람에 큰 문제 없이 넘어갈수 있었다. 다만 군에 안 가는 여학생의 경우는 84학번까지는 4년 내내 졸업정원제가 유지되고 있었기에 제적된 후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거나 중퇴로 끝난 경우가 꽤 많다. 결국 이 제도로 증원된 대학의 정원이 다시 일부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1990년대의 폭발적인 대학 설립, 전문대학의 업그레이드 허용 등과 함께 대학생 급증의 원인이 되었다.[* 이 대학생 정원 증가의 가장 큰 이유는 전후 베이비 붐에서 이어져 60~70년대 중반까지는 자녀를 다섯 이상 낳는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킬 여유를 가지게 된 가정이 늘자 자연히 학력향상에 따라서 입시가 지옥도가 될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사교육은 급속히 활성화될수밖에 없었고 결국 1990년대 이후로 출산율 감소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교육문화는 출생자수가 급격히 감소된 2000년대 이후로도 해결되자 못하고 있었다가 2020년 이후로는 고3 학생 수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아지는 사태까지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폭탄은 2010년대 입학생 감소와 더불어 [[부실대학]] 문제가 불거지자 대학 구조조정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지방 대학들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입학생이 부족해 장학금을 줘 가면서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했다. 학생이 너무 줄면 경영이 어려울 뿐 아니라 지명도도 떨어지고 교육부의 지원금이 줄어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20년 [[동부산대학교]]와 [[서해대학]]이 자진 폐교 신청까지 갔고 결국 폐교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