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휴 (문단 편집) === [[석정 전투]] === 조비가 죽고 [[조예]]가 즉위하자 장평후에 봉해졌고 오나라 장수 [[심덕]]을 격파하여 그 목을 베었으며 [[한종]], 적단의 항복을 받았다. 이 공으로 식읍이 4백 호 늘었고 대사마로 승진했다. 228년, 조예는 두 길로 오나라를 쳐 사마의에게 한수, 조휴에게 보병과 기병 10만 명을 이끌고 심양으로 진격하게 했다. 조휴는 [[주방(삼국지)|주방]]의 거짓 투항을 믿고 윤허를 얻어 적진 깊숙이 환현까지 들어갔다가 참패하는 [[석정 전투]]가 일어난다. 이때 버린 군수 물자가 매우 많았으며 군사 1만 명이 죽거나 포로로 사로잡혔고 가규가 군량과 병사를 주어 군세를 다시 떨칠 수 있었다. <가규전>에 주석으로 달린 위략에 따르면 조휴는 구원해준 [[가규]]에게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버리고 온 무기를 주워오게 했고 가규는 이에 반박했다. 조휴는 가규가 늦게 온 것을 꾸짖고 조정에 상주하여 가규를 모함했으며, 가규도 돌아온 뒤 상주했다. 조정에서는 비록 가규가 옳지만, 조휴가 종실로 중임을 맡고 있었으므로, 아무에게도 잘못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조휴는 [[석정 전투]]의 패배에 대해 글을 올려 사죄했는데 조예는 조휴를 위로하고 예우와 포상을 더욱 늘렸다. 하지만 패배와 조예의 자비로움으로 인한 부끄러움과 분함에 결국 등에 [[등창]]이 생겨 죽었다. 이에 조예는 조휴의 시호를 장후라 하고 아들 [[조조(둔기교위)|조조]](曹肇)가 뒤를 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