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치훈 (문단 편집) == 여담 == * 대국을 하다 실수가 나오면 자신에게 용서가 없다. 상대의 응수를 보고 실수를 깨달으면 "이 멍청이!" 하면서 크게 외친다든가,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세게, 정말 세게, 쾅쾅 소리가 날 정도로 때린다든가 하는 자학이 심한 기사이다. [[https://youtu.be/_rWnF-GMuAI?t=10m23s|링크 참고]].[* 링크된 영상을 보면 그림자로 조치훈 9단이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보인다. 최근엔 커제가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커제는 바둑돌까지 내던지는 쇼를 보인다. 사실 바둑돌을 던지는 것은 바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성격 탓에 습관이 별난 기사라고 일본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또 다른 버릇으로는 수읽기를 하면서 성냥개비를 똑똑 부러뜨리기가 있다. 지면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 일본으로 건너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귀화 권유를 여러 차례 받았음에도 아직도 한국 국적이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는 일본프로야구 최다안타(3085개) 보유자인 [[장훈(야구선수)|장훈]]이 있다. 둘 다 자기의 분야에서 정점에 올랐던 선수지만 끝까지 한국 국적을 고수했다. 장훈은 하리모토 이사오라는 일본이름이 있는데 조치훈은 일본에서 조치쿤으로 불린다. 음독으로 읽은것이다. 사실 홈런왕 세계기록 보유자(868개) [[왕정치]]도 일본이름은 오 사다하루이지만 중화민국 국적이다. 그러고 보면 조치훈, 장훈, 왕정치 전부 자기 분야에서 귀화하지 않고 전설적인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다.] 한국어 또한 계속 연습하는 모양이라, [[김성룡(바둑기사)|김성룡]]이 아직 어린 시절 세계대회에 계시를 하러 나갔는데, 외국 기사들에게는 영어로 초읽기를 하기가 관례라 조치훈에게도 영어로 초를 읽었더니 또렷한 한국어로 "한국말로 부탁합니다."라고 말해 상당히 놀랐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다만 말을 약간 더듬는다고 하는데 어릴 적 일본 아이들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국말로 이야기하다 일본 아이들이 못 알아듣는 기색이 역력하자 아차할 때마다 말을 멈추어서 그 영향으로 한국어를 더듬는다고 한다. * 원래 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조치훈의 이름은 항렬에 맞게 조풍연이었는데, 어느 [[지나가던 스님]]이 "개명하지 않으면 엄마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개명을 하면 본인이 어릴 적부터 물 건너에서 큰 이름을 날리게 되지만, 대신 동생이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결국 조치훈으로 개명한 후 그 말 그대로 동생은 영아 시절에 사망했다. 나중에 조치훈이 일본에서 성공한 후 조치훈의 아버지가 그 스님을 찾기 위해 신문에 광고까지 게재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 상대 전적에서 [[장쉬]]에게 약하다. * 골프를 좋아한다고 한다. 골프를 칠 준비를 위해 평상복이 골프웨어라고 한다. YTN과의 인터뷰에서 "[[조훈현]] 씨한테는 바둑은 못 이기지만 골프는 이기는 것 같아서, 골프 꼭 해야 되는데..."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 7번기 타이틀전(기성棋聖, 명인, 혼인보전) 통산 29승 9패. 특히 3연패 후 4연승을 3번 달성한 7번기의 귀신이다.[* 1983년 기성[[棋聖]]전([[후지사와 히데유키]]), 1984년 명인전([[오타케 히데오]]), 1992년 혼인보전([[고바야시 고이치]])] 1983년 혼인보전에서 [[린하이펑]]에게 3연승 후 4연패하며 대삼관을 달성한 지 얼마 못 가서 이를 내려놓은 적도 있다. [youtube(mdGh6m_QHUk)] * 2015년 7월 26일 현대 바둑 70주년 기념 [[조훈현]]과 대결했다. 무려 13년 만의 대결이고, 대국 시간은 1시간이라고 한다. 결과는 시간패했지만 대국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로부터 약 6개월 뒤인 2016년 1월 23일 '한국바둑의 전설'[* 조치훈,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등 레전드 기사 5명이 출전해 5인 풀리그로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다.] 개막전에서 다시 만나 [[조훈현]] 九단에게 211수 만에 흑 불계승으로 승리하며 특별대국 당시 시간패를 설욕했는데 그 뒤에 2월 13일 열린 [[유창혁]] 九단과의 대국에서 시간패[* 원래 조치훈은 바둑을 초장고로 천천히 두는 스타일이었다. 과거 바둑을 이틀씩 두던 시절에도 항상 시간이 부족했었고, 현대의 대회 룰이 점점 바둑 기사에게 주는 시간을 줄이는 추세이기 때문에 항상 초읽기에 몰리고 시간패의 경계를 오가는 대국이 많다.]를 당했다.[* 대국을 하다가 조치훈 九단이 땀을 많이 흘리는 바람에 반상까지 땀이 떨어졌고 이를 닦다가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초읽기까지 시간을 지체해버리는 바람에 이 상황이 벌어졌다.[[https://www.cyberoro.com/news/news_view.oro?div_no=11&num=521289|#]] 상대였던 [[유창혁]] 九단도 당황했다고 한다. 조치훈 九단은 툭하면 자기 머리를 때리는 습관이 있는데 이 날도 어김없이 자기 뒤통수를 가격했다가 맺혔던 땀이 대량으로 튀었다.] * [[http://media.daum.net/special/5/newsview?newsId=20150730002817673&specialId=5|패배, 그것도 운명 .. 힘들게 바둑 두니 인생이 재미있다]] * 2016년 11월 19일부터 일본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딥젠고]]와 맞바둑 세 판을 뒀다. 이세돌-알파고 대결처럼 각자 제한 시간 2시간이었다. 대국 1국서 223수만에 흑 불계로 이겼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2&aid=0003118331|#]] 하지만 다음날 2국에서는 백으로 패했다. 그리고 최종 3국에서 흑으로 승리하여 2:1로 2회 전왕전을 승리로 마감했다. * 인터뷰에서의 기행이나 톡톡 튀는 언변을 보면 상당히 유머러스한 사람인데 평소에도 코미디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어에 좀 더 능숙하고, 바둑을 업으로 삼지 않았으면 [[코미디언]]이 되었을 거라고. [[https://youtu.be/HYPu1lKAjxo|#인터뷰]] [youtube(mk2HEHY-oXE)] * [[2007년]] [[3월 11일]] [[요다 노리모토]]와의 [[NHK배]]. 서로가 [[트래시 토크]]를 어마어마하게 하는 기사로 유명하다 보니 정신 사나운 대국 [[레전설]]로 꼽힌다. [[http://blog.naver.com/kurayami89/220338312222|해당영상]] * 현재 일본 바둑계 최강으로 불리는 [[이야마 유타]] 九단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기사라고 한다. * 조치훈이 가장 좋아하는 바둑 기사는 [[김지석(바둑)|김지석]] 九단이라고 한다. 바둑 내용도 깔끔하고, 수도 잘 보고, 언변도 좋고, 결혼도 했고, 바둑 기사 중에서 호감형 외모이기 때문이라고. 한 마디로 요약해서 '제가 부러워하는 것만 다 가졌어요.'라고 했다. * 배우자 소가와 교코[* 결혼 후 조치훈의 성을 따랐기 대문에 결혼 후 본명은 조 쿄코다.]가 2015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슬하엔 1남 1녀가 있다. 자녀는 모두 [[일본]] [[국적]]이고 한국 국적은 없다. 조치훈은 국적만 한국이지 한국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지 오래라 아버지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 국적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음치]]다. 자기가 노래를 부르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웃는다고. 예외로 이마가와 기사가 조치훈의 노래를 한참 듣다가 울었다는데, 알고 보니 2절까지 들어서야 자기 애창곡을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서라고.[* 애창곡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노래가 끔찍했다는 것이다.] 딥젠고와의 제3국을 해설하던 [[이야마 유타]]도 조치훈의 노래 실력은 잘한다, 못한다를 초월한 무언가라고 평했다. [[https://youtu.be/ChSKUVHf-Ac?t=124|#]] * 일본 내 기전에서 해설을 하거나 인터뷰를 하면 1인칭 대명사로 [[보쿠]]를 사용한다. 참고로 현재 일본에선 연배가 있는 어르신들이 편하게 말하고 싶을 때 고르는 대표적인 인칭 대명사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보지 않아도 된다. * 한국 국적을 유지한 것과는 별개로 한국기원 소속 선후배 기사들과 어울린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사연이 있다. 1980년 조치훈이 명인 타이틀을 얻고 한국으로 귀국했을 당시 정치인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자신과 조훈현을 두고 대국을 해보라고 권했는데, 이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높으신 분들한테 찍혀서 사실상 한국기원과 관련된 기전이나 행사에는 얼굴도 못 비추게 되었던 것.[* 이런 권유는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상당히 무례한 요구로 통한다. 당시 조훈현도 난감한 기색을 보이며 대국을 꺼렸다고 한다. [[고스트 바둑왕]] 초반에도 [[토우야 아키라]]가 갓 프로가 되었을 때 후원자격인 동네 정치인이 바닥에 떨어진 바둑돌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가거나 주최측에서도 후원자에게 밉보일까봐 져달라고 요구하자, 아키라가 문제의 정치인을 포함한 4인 동시 경기를 모두 비기는 걸로 복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하나는 조훈현과 기념 대국을 두었을 때[* 2번을 둬서 2번 모두 조치훈 九단이 이겼다.] 팬들이 조훈현 九단만을 응원하고 자신은 일절 응원하지 않아 자신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사람들은 일본기사로 생각한다 여겨[*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누구든지 해외생활 몇 년만 해도 취급이 이렇게 된다. 같은 한국국적인 장훈도 사실 이런 느낌이었다. 김성근 감독도 한국에서는 초창기에 반쪽바리 취급을 받았다고(..) 이와 다르게 똑같은 재일교포인 추성훈이나 추사랑, 아유미같은 경우는 미디어 노출을 많이 해서 거리감이 많이 줄었다.] 한동안 거리를 뒀다고 한다.[* 다만 조훈현 九단은 국내에서 활동하며 확고한 팬이 있었지만 조치훈 九단은 일본에서만 활동해 국내에 팬이 없었던 것의 문제라 본다. 타 종목으로 치면 [[KBO 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국내에 확고한 열성팬이 있는 [[류현진]]과 메이저로 바로 간 [[추신수]]의 차이라 봐야 할 듯. 거기다가 이 당시만 해도 한국 바둑의 실력이 일본 바둑에 못 미친다는 평이 대세라 사람들은 내심 조훈현 九단이 언더독으로 이겨주길 바랐던 것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