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창 (문단 편집) == 평가 == 여러모로 우수한 장군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고 조조 사후에도 식읍을 1만 호나 다스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지만, 아버지가 죽은 후 형에게 반기를 드는 바람에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아까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20대에 오환에서의 활약 이후에 아버지가 죽고 나서는 형에게 중용받지 못해서 활약상도 전무하다. 어떻게 보면 본인이 그렇게 지향하던 [[곽거병]]과 비슷했다고 볼 수 있는데, 장거리 급습을 성공시키는 과감한 지휘 스타일, 그리고 젊은 나이 때에만 잠깐 활약했던 점, 전공으로 큰 위세를 누렸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 허나 병사들을 대하는 모습에 있어서는 오히려 곽거병보다도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곽거병은 병사들이 굶주리는 것을 방치할 정도로 병사들의 복지에 무관심하였지만, 조창은 병사들에게 파격적으로 두 배의 포상을 내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병사들에게 후덕했다. 만약에 조창이 조조 사후 왕위계승을 노리지 않았거나 조조의 아들이 아닌 친인척이었거나 최소한 조조의 서자였다면 [[조비]]가 조창을 [[조진#s-1]]과 [[조휴]]처럼 황실의 방패막으로 삼을 인물로 지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창은 나이와 재능을 감안해 볼 때 조진과 조휴보다 훨씬 더 잠재력이 있었다.][* 이것은 동생 [[조식(삼국지)|조식]]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조진과 조휴가 연달아 죽은 후에도 황권과 신권의 균형추가 유지되었을 것이고, 함량미달인 [[조상(삼국지)|조상]]이 권력을 잡아 [[고평릉 사변|조위 황실을 말아먹는 일]]도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만약의 가능성을 짙게 남기기도 한다. 형 조비에게는 조식을 후계자 자리를 두고 처절하게 싸운 최대 경쟁자로 깊이 의식했다면 조창은 아버지에게 겨우겨우 물려받은 권력을 빼앗아버릴 수 있는 막강한 정적으로 조비가 무척 꺼리고 두려워했던 인물이다. 실제로 조식의 문집인 조자건집에 따르면 황제 위에 오른 조비가 어느날 조식을 친히 만나러 와서 조식이 기뻐했다는 구절이 있어 두 사람이 시간이 지나며 감정이 많이 누그러진 것이 확인되는데, 당초에 형이 황제 위에 오르자 순순히 현실과 타협한 조식과 달리 조창의 경우엔 대놓고 형인 조비의 계승을 위협하는 말을 언급하는 등 야심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경계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쟁에 매우 민감한 조비가 초야로 숙청한 조식과 대비적으로 조창은 공, 왕으로 임명한것을 보면 분명 마냥 조창이 좋아서 그랬을 리는 가능성 제로고 오히려 조창의 압도적인 포스에 억눌려 표면적으로는 타협을 하는 제스쳐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조조 생전 때 본인이 군사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글공부나 정치에 아주 약간이라도 흥미를 보였으면 후계 경쟁에서 형제들 사이에 압도적인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