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참 (문단 편집) === 아무것도 안 하는 재상 === 소하는 본래 조참과 사이가 나쁘지 않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해서 그와 몹시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 --너 같은 놈 100명이 있어봤자 소하 하나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도 친하게 지낸다면 그건 보살일 것이다-- 혜제 2년 소하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둘 때, 혜제가 소하를 찾아와 "차기 재상으로 조참이 어떤가?" 라고 묻자, 소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황제께서 좋은 재상을 얻었으니, 소하는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소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참은 "그래? '''내가 상국이 되겠네'''?" 하더니 무작정 짐을 꾸렸는데, '''진짜로 황제의 사자가 조참을 부르러 왔다'''. 조참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하고 제나라를 떠나 상국으로 부임한다. >감옥과 시장은 간사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이니, 그러한 곳에 대해서는 마땅히 신중해야 하며 혼란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감옥과 시장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곳이다. 만약 그대가 그곳들을 엄중히 관리하지 않는다면, 간악한 사람들이 몰려와 가득 찰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이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참은 부임하더니 괴이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글을 잘 쓰거나 출세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쫓아버리고, 별 생각도 없고 글도 질박하게 쓰는 사람들을 데려와 승상부(丞相府)의 관리로 임명했다. 그러더니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만 퍼마시고 살았다'''. 경(卿)·대부(大夫)·관리·빈객 등이 대체 [[무슨 지거리야|무슨 지거린가]] 싶어 조참에게 따지려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조참은 '''손님들에게 억지로 술을 퍼먹여서''' 아무 말도 못하게 했다. 어떻게 입을 좀 떼보려고 하면 '''계속 술을 권하니''' 결국 따지려고 찾아온 사람들은 인사불성이 되어 나가기 일쑤였다(…). 별 생각도 없다가 뜬금없이 불려왔는데 자기를 부른 상관은 일은 커녕 술만 퍼마시고 있으니 승상부 관리들은 조참을 매우 미워했지만, 뭐라 하려고만 하면 술을 먹여대는 통에 방법이 없었다. 생각한 끝에 승상부 관리들은 조참을 아예 후원으로 나와서 놀게 하고, 이웃에 있는 관사에서 다른 관리들이 모두 술을 진탕 먹고 고성방가를 하며 놀게 했다. 부하들이 놀자판인 걸 보면 천하의 조참도 기강을 잡으려고 술을 삼가게 될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그런데 조참은 그 광경을 보더니 '''되려 자기가 앞장서서 놀이판에 가세했다'''. 승상부 관리들이 실수라도 하면 좀 책망하려나 했더니, 따지기는커녕 허허 웃고 마니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혜제 역시 조참의 그런 괴이한 모습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아서, 조참의 아들 조줄(曹窋)을 불러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 >집에 돌아가거든 조용히 부친에게 '고제(高帝)가 돌아가시어 신하들과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황제의 나이도 아직 젊은데, 부친께서는 상국이 되어 날마다 술만 마시고 황제께 소청하거나 보고하는 일도 없으니 무엇으로써 천하 대사를 걱정하십니까?' 라고 물으라. 물론 짐이 그랬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 조줄은 황제가 시키는 대로 집에 가서 "아버지, 왜 일을 안하세요?" 하고 물어보았는데, '''조참은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아들을 두들겨팼다'''. >'''넌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모시는 일이나 제대로 해라! 네까짓 게 천하의 일을 말할 바가 아니다!''' 어이가 없어진 혜제는 조참을 보자 내막을 밝히고 대체 왜 그랬느냐고 나무랐다. 이때 조참이 남긴 말이 유명하다. >"폐하께서는 돌아가신 고제(高帝)보다 더 영용(英勇)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어찌 감히 선제(先帝)와 비교를 할 수 있겠소?" >"그럼 폐하께선 저와 소하 중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너 하는 꼬라지를 보니-- 조 상국이 소 상국보다 못한 것 같소!" >"그 말씀대로입니다. 고제께서 천하를 평정하였고, 소하가 법령을 밝게 정하였습니다. '''둘보다 못한 우리는 직분을 지키면서 옛 법도를 따르기만 하고 잃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즉 자신이 딱히 하는 게 없었던 건 사실이나(…) 이것이 엄연히 정책에 대한 분명한 관점에 의거한 행동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결국 혜제는 별 말 없이 조참을 돌려보냈다. 이것이 '소하가 규정하면 조참이 따라간다', 즉 '이전의 기틀을 그대로 물려받아 보전한다'는 뜻의 고사성어 소규조수(蕭規曹隨)의 유래이다. 이럴 만도 한 게 당시 중국은 550여년을 끌어온 [[춘추전국시대]]라는 전무후무한 대난세가 끝나나 싶더니 천하통일을 이룩했던 진나라가 혹형과 폭정 및 과도한 대토목공사로 순식간에 붕괴하고, 그 뒤를 이어 격전이 이어진 초한전쟁이 터지는 대혼란기였다. 이제 한나라가 다시 중국을 통일하긴 했으나, 2,000만명이나 되던 중국의 인구가 500만으로 줄어들었을 정도로[* 물론 1,500만명이 모두 사망한 것이 아니라, 전란을 피해 산 속이나 외국으로 도망가는 등 호구를 이탈하여 국가가 파악할 수 있는 인구수가 감소한 것이다. 때문에 중국 역사를 보면 나라가 망할때마다 인구가 드라마틱하게 감소했다가 통일제국이 세워지면 다시 크게 증가하는데, 이렇게 호구에서 빠진 사람들이 사회와 나라가 안정되자 다시 국가 체계 안에 편입되어 인구가 증가한 것이다. 다만 춘추전국시대 말기~초한전쟁의 거진 백년을 거치면서 장수가 말이 없어 소를 타고 온 나라에 시체가 널려있다는 묘사처럼 피해가 막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온 나라가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국가적으로 뭔가 일을 벌이는 것보단 그냥 법과 질서만 세워 놓고 내버려 두는 게 나은 선택일 수 있었다. 애초에 법과 질서는 소하가 정리해 놓은 상태라서 굳이 뜯어고칠 데도 없었고. 통일했다고 이것저것 빡빡하게 돌리다가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해서 15년만에 망해버린 진나라의 사례가 있으니 더더욱.[* 게다가 진나라는 이 시점에서 고작 30년 전에 멸망했던 나라였다.] 진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더 나아가 세계사에서도 뭔가 큰 사업을 시도했다가 국운이 기운 나라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전한 역시도 흉노 정벌로 문경지치, 한무성세는 끝나고 국력이 기운다. 훗날 수나라도 대운하를 파다가 거하게 망했다. 물론 그 운하는 후대 국가들이 잘 써먹었지만...] 유방이 괜히 함양에 입성한 뒤 법을 약법 3장으로 퉁친 게 아니다.[* 물론 실제로는 약법 3장만으로는 거대 제국을 다스릴 수 없어서 기존 진나라의 법을 다수 가져다 쓰긴 했지만 그 적용은 진나라에 비해 훨씬 널럴했다.] 조참의 이런 결정은 황로술(黃老術)의 영향이 강한 전한 초기에 노자가 이상적인 군주의 덕목으로 꼽은, 바로 위에서 조참이 우선으로 했다고 서술된 '무위의 치(無爲而治)'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혜제나 조참이나 인정했듯 자신들은 각각 자신들의 선대인 고제나 소하보다 못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앞의 한나라의 처참한 상황과 그런 상황에서 일단 고제와 소하가 나라의 틀을 어느정도 만들어놓은 상태에 진나라의 전례를 감안하면 능력이 있어도 백성들이 힘든 상태에서 뻘짓으로 나라를 망칠 수 있는데 능력도 그렇게 없으면서 뭘 하겠다고 하는 것은 백성에나 나라에나 해롭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멀리갈 것없이 현대에서도 똑같은데, 어느 나라나 후임이 선임 업적 지우기하고 자기 업적 세우려고 발악하다가 오히려 조져버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선임인 소하가 자기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그거 유지만해도 된다고 판단하고 실행까지한 시점에서 조참도 굉장한 걸물인 셈.] 어차피 백성들도 진나라로부터 고생한게 오래전 일도 아니니 뭘 하겠답시고 들볶는 나라보다 알아서 잘 하라고 내버려두는 나라가 더 고와보일 것이다. 과연 조참의 방책이 헛되지 않았는지, 조참이 죽자 백성들은 노래를 지어 부르며 조참의 덕을 추모했다. >蕭何爲法 若畵一(소하가 법을 세우니 획 하나까지 분명했네) >曹參代之 守而勿失(조참이 그를 이으니 그를 지키고 잃지 않았네) >載其淸淨 民以寧一(맑고 공정하게 이를 돌보니 백성들이 한결같이 편안했네) 사마천은 이렇게 조참을 평론하였다. >상국 조참이 야전(野戰)의 공로가 많음은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과 같다. 그런데 한신이 멸망한 후에 열후에 봉해진 공신 중에서 유독 조참만이 그 이름을 빛냈다. 조참이 한나라의 상국이 되자 시행했던 그의 정치 사상 청정무위(淸淨無爲)는 [[도가]]의 원칙과 가장 부합된다고 하겠다. 더욱이 백성들이 진나라의 잔혹한 통치를 받은 후, 조참이 그들에게 무위이치(無爲而治)로 휴식하게 하자, 천하 사람들이 모두 조참의 공덕을 칭송하였다. >---- >[[사기(역사책)|사기(史記)]] 조상국 세가(曹相國世家)''' 근데 시키는 대로 했다가 오버액션에 괜히 맞기만 한 조줄만 낭패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줄은 어사대부로 잘 나가다가 여씨를 척결할 때 협조하지 않았다 하여 면직되었다고 한다. 다만 면직만 되었을 뿐 평양후의 지위는 계속 가졌고, 평양후는 조참의 5대손 조종(曹宗)이 [[무고의 화]]에 연루되어 죽고 봉국이 폐지될 때까지 유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