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중응 (문단 편집) == 개요 == [[조선]] 후기 [[개화파]] 관료이자 [[일제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정미칠적]]과 [[경술국적]]에 포함된 인물. 초명은 중협(重協), 본관은 [[양주 조씨|양주(楊州)]], 아호는 낭전(琅田). 1860년 서울 출신. 친일 성향의 개화파 관료로 1883년 10월 서북 변계 조사위원으로 임명되어 [[러시아]]와 [[만주]] 등을 답사하고 돌아와 북방남개론을 주장하다가 [[탄핵]]을 받아 전라도 보성으로 [[유배]]되어 6년을 보냈던 인물. 1906년 이완용 내각의 법부대신으로 입각해 [[정미 7조약]], [[한일병합조약]] 등에 동조하며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에 대한 대가로 [[경술국치]] 이후 조선귀족 자작 작위를 수작했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