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조 (문단 편집) == 기타 == >갑(, 모자)은 위나라 무제가 만든 것이다. 군중에서 복장의 간편함을 위해 만들었으며, 또한 오색의 갑()을 만들어 방면(方面)을 표시했다. >---- >고금주 『여복』 >위나라 무제는 [[마노]]석으로 만든 말 재갈과 거거(車渠)[* 커다란 조개껍데기, 꽤나 비싼 사치품이라고 한다.]로 만든 술 사발을 만들었다. >---- >고금주 『잡주』 >봉(棒)은 최정웅(崔正熊,최표崔豹)의 주註에서 이르길: 거폭車輻이다. 한나라 때 집금오(執金吾)의 금오(金吾) 또한 봉이다. 구리로 만들고 황금으로 양 끝을 칠했기에 금오라 하였다. 어사대부, 사례교위 또한 그것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을 수레바퀴에 끼웠기에 거폭이라 하였다. 한편으로는 그 모양이 수레바퀴살과 비슷해서 거폭이라 했다고도 한다. 위나라의 조조가 낙양북부도위로 있을 때 문에 오색 봉을 걸어 호활(豪猾)들에게 위엄을 보였다. >---- >중화고금주 >위나라 무제는 일찍이 골짜기에서 검을 하나 얻었는데 금가루로 맹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무제는 늘 그것을 착용했다. >---- >도검록 * [[춘추시대]]의 어느 나라를 조조의 종씨로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주나라]] 왕실 종친이다. * [[사물기원]]의 설명에 의하면 최초로 전하(殿下)로 불렸다고 한다. 전하라는 호칭은 원래 한나라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위왕으로 봉해진 조조를 두습이 전하로 호칭한 것이 전하라는 존칭의 시초라고. [[전하(호칭)|전하]] 문서 참고. * 조조가 끈질기게 등용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한 인물 두 명이 있다. 바로 [[관우]]와 [[태사자]]였다. 둘 다 무예로는 당대급 수준이었는데 관우는 일시적으로 부하로 두는 데는 성공했으나 결국 얼마 못 가 조조를 떠나버렸다. 태사자에게는 조조가 직접 [[당귀]]를 선물하며 등용을 시도했으나 태사자는 잠시 보류하고 있다가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일으키자 실망해 조조를 거부했으며 나중에 [[손책]]의 휘하로 들어갔다.[* 삼조시문역주에 따르면 [[제갈량]]도 회유한 적이 있다.] * 젊은 시절에 [[하후돈]], [[하후연]] 형제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놀고 먹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한 객잔에서 [[무선황후 변씨|가기]]를 겁탈하려는 취객을 막으려다 그 취객을 살해해버렸다. 이것 때문에 관군에게 잡힐 위기에 몰렸는데 그 가기가 조조의 검을 빼앗아서 하후연에게 쥐어준 뒤 조조를 도피시켰다. 이후 하후연은 체포당했고 조조는 집에 가서 돈을 많이 들고 관가로 찾아와서 하후연을 체포한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하후연을 데려왔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고 조조는 그 객잔을 다시 찾아가서 그 사건에 연루된 가기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이후 계속 같이 살았다. * 조조의 성인 조씨는 원래 그의 성은 아니었고, 그의 아버지인 [[조숭]]이 [[환관]] [[조등]]의 [[양자(가족)|양아들]]로 들어가면서 얻은 성씨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원래 성씨는 [[하후]]씨라 하며, [[하후돈]]이나 [[하후연]]과는 친척 형제에 해당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조조의 원래 성씨가 하후씨인지 정말로 하후돈과 하후연이 친척 형제인지는 현재까지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조숭]] 항목 참조. * 현대에 와서는 주로 일본 창작품의 영향을 받아서 미남으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위서에 '키가 작지만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당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키가 작았을 것이다. 일본 미디어에서의 조조=[[오다 노부나가|직전신장]] 공식에 의해 조조를 한나라를 부정한 혁명가, 개혁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는 한나라를 부정하기는커녕 협천자를 칭하며 한나라의 권위에 기대어 등골까지 쪽쪽 빼먹었지만 말이다. 일본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의 조조의 모습은 비슷한 시기의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의 모습과 거의 같다. 코에이 사의 역사 시뮬레이션이 인물 개개인의 매력에 의지하는 경향이 큰 만큼, 여러 인물들의 특징적인 면들을 강조하다 보니 이런 일이 왕왕 발생하는 것. 코에이를 비롯한 일본에서 씌여진 2차 창작에서 조조와 오다 노부나가를 등치시키는 면이 상당히 강하다. 일본에서 조조를 '냉혹한 초인'으로 묘사한 것은 나쁠 것 없는 캐릭터 해석이었다. 중화권의 삼국지 컨텐츠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코에이 게임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 삼국지 팬덤의 현실상 코에이 게임의 이미지 메이킹, 특히나 그 정점에 선 캐릭터인 조조의 이미지는 한국 삼국지 팬덤에 깊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 고우영은 호색하고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조조를 가리켜 '[[좆]]조'라고 놀렸다. * 근래에 이르러 사서에 기록된 조조의 만행들이 속속 알려짐에 따라 삼국지 독자들 사이에서 조조를 한 글자로 합쳐서 '쬬'라는 별명이 붙었고, 지금은 조조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별명 중 하나가 되었다. * [[원소(삼국지)|원소]], [[원술]], [[채모]], [[허유]] 등이 조조의 친구들이다. 하지만 원소는 어른이 되고 난 이후 [[관도대전|절교해서 불구대천이 되었으며]], 허유는 너무 오만무례하게 구는 바람에 조조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고 결국 꼬투리가 잡혀서 조조에 의해 처형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