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재현 (문단 편집) === 데뷔 초기 === 1965년 6월 30일,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2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02/2016070200511.html|출처 기사]]] 이후 가족 전체가 상경해 [[은평구]] 지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어릴 적에는 산동네에서 살 정도로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웠으나, 아버지의 연탄 사업이 연탄파동으로 성공하고 연이어 시작한 석유 및 시멘트 사업까지 대박을 치면서 자가용을 타고 등하교를 할 정도로 부유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미술]]을 전공하려 했으나,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해야 하는 [[데생]]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정물을 같은 모습으로 그리는 게 싫었다고... 결국 미술을 업으로 하겠다는 길을 포기하고[* 그래도 지금도 취미로 가끔 [[그림]]을 그리곤 한다. 2013년에는 전시회도 했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2983850|관련 기사]].] 중학교 3학년 때 친누나의 권유로 보러 간 연극 '[[결혼(희곡)|결혼]]'에서 한 배우가 철학적이고 멋진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배우를 꿈꾸게 됐다고 한다. ||<-2> [[파일:attachment/jojaehun21.jpg|width=100%]] || || 극단 '하늘창' 소속이던 21살의 조재현[* 조재현은 본인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TV쇼에서 외모에 대한 칭찬을 받으면 당연하다는듯이 받아들이며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스스로 외모를 띄울 정도. 어릴 때는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 미소년인 줄 알았다고 한다. (젊었을 때 외모 사진을 보면 그럴 만하다.) 다만 키는 좀 작은 편이다. 프로필상으로는 170cm지만. 연예계 프로필이 늘상 그렇듯이 160 중후반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듯.] || 결국 조재현은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지만 별다른 목적없이 방황하고 있다가 3학년 때 삭발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워크샵으로 하는 2인 연극 아일랜드에 출연한다. 연극 아일랜드는 그에겐 여러모로 각별한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된 작품이자 지금의 아내와 만나게 해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연극 아일랜드를 기획한 사람이 바로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전수일 감독.[* 현재 [[경성대학교]] 영화학과 교수.]그와는 한 학번 차이나는 학교 선후배 사이로 이후 두 사람은 16년 만에 다시 만나 다시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조재현이 모교의 영화학과 부교수로 임용되면서 마주하게 되었다. 이후 [[경성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온 조재현은 1989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다. 이듬해 친구들과 극단 ‘종각’을 만들고 <세발 자전거>(1989),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1990), <[[우묵배미의 사랑]]>(1990) 등을 무대에 올렸다. 특히 1991년 <[[에쿠스#s-3|에쿠우스]]>의 알런 역으로 주목을 받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공채 탤런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극단을 차린 이유는 많고 많은 연극단 단원 오디션에서 '''"넌 연기하지 마라."'''는 혹평을 듣고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작은 키 때문에 오디션에서 퇴짜를 맞은 적도 있어서, 키높이 깔창이 없던 시절에 직접 라면박스를 잘라서 신발 안에 넣어 키가 커보이게 하고 다녔다고 한다. 결국 일이 없어서 수입이 제로에 가까워지자, 아예 뜻이 맞는 친구들과 극단을 차리고 본인이 연극무대 주연으로 서게 된 것. 이 것은 본인이 부유한 집안이였기에 가능했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다. 나중에 밝혔는데, 본인도 어렸을 적에는 매우 [[발연기]]였다고 한다.[* 의외로 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과거에는 발연기였다고 말했다. '''[[이순재]]'''조차도 자신이 30대가 되기 전까지는 [[발연기]]를 했다고 한 적도 있다. 이순재는 심지어, [[성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을 했을 정도...] 1992년 독립영화[* 참고로 이 영화를 찍은 홍기선 감독은 나중에 [[이태원 살인사건(영화)|이태원 살인사건]]을 연출한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서 알선업자에게 속아서 [[섬노예|새우잡이배]]를 타는 주인공 '재호'로 출연하면서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보여 준 처절하면서도 비굴한, 그리고 절박한 연기는 관계자들에게 조재현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인식시켰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하였으나,(애초에 흥행은 기대하기 어려운 성격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통해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안성기]]와 함께 출연한 <영원한 제국>에서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