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원우 (문단 편집) === [[쌍방울 레이더스]] === ||[[파일:/image/295/2010/01/10/13.jpg|width=400]]|| ||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 ||[[파일:CWW1.png|width=500]]|| || [[https://www.youtube.com/watch?v=BLzLpQ3h63M|1999년 쌍방울 시절 그의 모습]][*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김성근]] 감독과 대화하는 모습이다. 영상 속 37분 20초부터 그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 > 복도에선 [[김성근|김 감독]]이 조원우를 붙잡고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LG 3차전 노아웃 상황에서 2루로 나간 조원우가 왜 도루를 하지 않았는지. 싸인을 기다렸던 것인지. 거기가 그날 '''승부처'''였던 것이다. - [[https://youtu.be/OPTlW_rWaLs?t=2240|방송 내용 중]] ||[[파일:CWW2.png|width=500]]|| || 사진에서 왼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조원우[* 오른쪽은 [[김성래]] 전 한화 2군 타격코치. 말년에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쌍방울에서 뛰었다.] || 이후 [[한국프로야구/1994년/신인드래프트|1994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5순위(전체 34번)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4 드래프트에서 쌍방울이 유일하게 건진 선수가 '''조원우 한 명'''이다...] 조원우의 부친은 육상선수 출신이었고, 그래서인지 조원우 역시 발이 빠른 편이었는데[* 빠른 발과 정확한 컨택 능력을 생각한다면 2번 타순에 기용하는 것이 적당하나 나름 클러치 능력도 있어 주로 6번 타순에 기용됐다. 1번 타자로 출전한 적도 적지 않다.] 이 덕에 쌍방울 시절에는 1번 내지는 3번타자로 활약했다. 쌍방울의 전성기였던 1996년~1997년에는 상위타선에 발 빠르고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최태원(야구)|최태원]]과 [[김실]]이 있었고 이어 조원우-[[김기태(1969)|김기태]]-[[심성보]]-[[박경완]]에 이르는 클린업이 포진됐다. 그야말로 장타와 단타가 연속적으로 터져서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는 타선 구축이 가능했던 것. 1997년과 1998년에는 연속 3할을 기록했으며, 1997년에는 3루타왕(9개),[* 3루타는 타자주자의 주력도 관건이지만 야구장의 크기와 수비하는 외야수의 상황 등이 영향을 미치는 기록이다. 쌍방울의 홈이었던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은 좌우 95m-중간 110m 규모의 매우 작은 야구장이었는데 이 작은 구장에서도 3루타를 곧잘 때려냈다는 것은 그만큼 컨택 능력이 좋고 발이 빠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다.] 1998년에는 홈런 12개를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도 있던 선수다. 특히 1997년에는 팀이 타율/출루율/장타율은 해태를 넘어선 2위를 기록했는데,[* 팀 득점과 홈런에서는 해태에 밀린 3위를 기록했다.] 그 중심에서는 조원우가 있었다. 97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김태한]]을 상대로 선두타자 홈런을 때려내며 큰 경기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해 비록 쌍방울은 삼성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지만, 그의 한방으로 쌍방울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불태울 수 있었다. 1998년에는 149안타로 최다 안타 부문 2위에 오르기도 했고 유일하게 그 해에 두자리수 홈런(12홈런)을 기록했으며, 또한 희생타 1위(39개)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큰 기대를 가지고 0.314로 고감도 타격을 보여주던 1999년 5월, 주간 수비 훈련 도중 공을 잘못 밟아 왼쪽 고관절 인대에 부상을 입었고 시즌 아웃되었다.[* 전년도에 트레이드로 팀을 떠난 [[김기태(1969)|김기태]]와 당뇨병을 앓고 있었던 [[심성보]]가 모두 이탈한 타선에 조원우마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쌍방울 입장에서는 큰 악재였다. 거기에 주축 투수인 [[김원형]]까지 [[장종훈]]의 타구가 얼굴을 정면 강타해 시즌 아웃되자 쌍방울은 완벽히 환승역 없는 8호선 신세가 된다.] 이 부상으로 인해 군면제 처리됐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으며 이후 조원우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다른 팀에는 주간에 이런 무리한 훈련을 실시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지옥훈련으로 유명한 김성근은 체력 저하 및 부상 우려 논란에도 경기 시작 전까지 이런 훈련을 지속했었다.--역시 킬성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