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식(조선) (문단 편집) == 개요 == >'''內明者敬 外斷者義'''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이다.[* 남명이 차고 다니던 경의검(敬義劍)에 새긴 글이다. 그가 중시한 경의협지(敬義夾持), 즉 내면의 수양인 경(敬) 뿐만이 아니라 외적 행위의 기준이 되는 의(義) 또한 겸비해야 한다는 사상을 압축한 [[검명#s-2]]이라 하겠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본관은 [[창녕 조씨|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방장노자(方丈老子), 방장산인(方丈山人), 산해선생(山海先生)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사림파|사림]]의 계보와 [[붕당]]을 설명할 때 [[서경덕]]과 함께 [[북인]]의 시조 중 한 사람으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조선 [[성리학]]의 거두로, 의(義)를 철저히 중시하고 현실정치를 강하게 비판하여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다. 당대에는 [[이황|퇴계 이황]]과 [[이이(조선)|율곡 이이]]에 비견되는 명성을 떨쳤으며, 현대에도 [[경상남도]] 권역에서는 이들에게 밀리지 않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진주시|진주]]를 비롯한 서부 경남지역에서 이런 경향이 더 짙다. 진주에 자리잡은 [[경상국립대학교]]는 주기적으로 학회도 열고 [[경상국립대학교/가좌캠퍼스#s-4.19|남명학관]]이라는 건물도 지어놓는 등 남명 사상의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경상남도에서도 2020년 『경상남도사』를 편찬할 때 문화사를 다룬 [[https://archives.gyeongnam.go.kr/00079/00141.web?amode=view&idx=5243&sigun=SIGUN01|제 8권]]에서 경남의 시대별 선비문화와는 별도로 남명과 그의 사상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거나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4559|『남명집』의 정본화 작업]]에 예산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