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식(삼국지) (문단 편집) == 문학적 재능 == 앞서 말한 대로 시문에 굉장히 빼어났기 때문에 그의 시는 후세의 문인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는데, 삼국시대의 [[건안칠자]]와 더불어 삼조(三曹, [[조조]], [[조비]], 조식)로서 문학의 귀재로 불렸을 정도이다. 남북조시대 종영이란 사람은 전대의 문장가들의 시를 집대성해 평가한 책인 [[시품]]에서 조식의 문학적 재능을 인간에서는 [[주공]] [[공자]], 동물에서는 [[용]] [[봉황]], 음악에서는 거문고와 생황, 재봉에서는 천자의 예복 자수에 비교했고, 역시 남북조시대의 빼어난 문인인 사령운은 조식을 문장에 대한 천하의 재능이 1말이라면 그 중 8두를 조식이 차지한다고까지 높게 평가했다. 이렇듯 후에 [[두보]]가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의 시성으로 불렸다. 이런 그의 재능은 [[삼국지연의]]를 읽은 독자라면 한번쯤은 보게되는 [[칠보시]]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진짜 조식의 창작인지는 불명이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그의 문집인 조자건집에 전한다.[* 참고로 한국에도 번역된 책이다.] 연의에 나오는 동작대의 건립을 기념하여 지은 "동작대부"는 엉뚱하게도 [[제갈량]]에 의해 [[주유]]를 열받게 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실제의 동작대는 적벽대전 이후에 건립. [[제갈량]]이 조식과 [[키배]]를 뜬 적이 있기는 하다. 조식이 [[광무제]]의 사적을 예로 들며 [[광무제]]의 [[운대 28장]]은 [[한고조]] [[고제|유방]]의 [[한신]], [[팽월]], [[영포]], [[소하]], [[장량(전한)|장량]] 같은 인물에 미치지 못한다는 논설을 폈는데, [[제갈량]]이 거기에 반박하여 주장하기를, "[[한고조]]는 재능에 부족함이 있어 신하들이 스스로 활약할 여지가 있었으나, [[광무제]]는 너무 뛰어나서 운대 28장이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건 답이 없는 문제이기에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생각하기 나름. 그래도 이 설전이 그래도 당대의 기재인 제갈량 측에서부터 태클을 걸며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조식의 수준이 짐작갈 것이다.[* 둘의 키배가 사실이라면 왜 조식이 제갈량에게 의도적으로 설전을 걸고, 제갈량이 굳이 받아들였는가를 짐작 가능한데 조식은 조조를 광무제에 대입하여 추켜세워 조씨가 유씨로부터 나라를 찬탈한 것을 아주 마땅한 일로 포장하기 위함이고, 촉의 건국이념이 한나라를 계승하여 역적짓을 한 위나라를 토벌한다는 걸 내세운만큼 직접 반박해야 한다고 제갈량이 판단해서로 추정된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조비-조예 부자에게 공기취급 받는 조식을 건드려서 위나라 내부에 정치적 혼란을 야기할 떡밥을 투척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반대로, 조식 입장에서도 위의 대립세력의 중추인 제갈량과의 키배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조금이라도 살려보려는 야심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위왕의 잘 나가던 왕자였던 시절 시는 부어라 마셔라 술 마시고 노래하고 내가 세상 평정하리 식의 호방한 시가 많지만 떨거지가 된 이후에는 처량한 기색이 묻어나온다. 황도에서 벗어나 촌구석을 전전하다 보니 백성들의 비참한 실상을 알게 되고 그를 슬퍼하며 읊은 노래도 제법 된다. 그가 자신에게 형수가 되는 조비의 아내인 [[문소황후]]를 남몰래 연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의 걸작 [[낙신부]]는 낙수의 여신 복비[* 하백의 아내이지만 예와 바람이 나서 하백이 예와 싸우다 한쪽 눈을 잃게 만들었다. 아름답지만 방탕한 이미지가 짙다.]와 조우하여 그녀의 미모를 읊은 시인데, 혹자들이 평하길 이 시의 복비가 바로 문소황후라고 한다. 다만 사료 상의 근거는 불분명하고, 그저 후세인들의 찌라시일지도. 다만 만화 창천항로에서는 해당 내용이 묘사되어있다. 조식은 조비와 조예에게 핍박 받던 시기에 지은 야전황작행(野田黃雀行)이 유명하다. 야전황작행이란 '들판의 참새'라는 뜻으로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 高樹多悲風(고수다비풍) : 높은 나무에 슬픈 바람 자주 일고 海水揚其波(해수양기파) : 바닷물은 그 물결 드높아라 利劍不在掌(이검부재장) : 날카로운 칼 내 손에 없으니 結友何須多(결우하수다) : 친구인들 어찌 반드시 많으리오 不見籬間雀(불견리간작) : 보지 못했는가, 울타리의 참새들 見鷂自投羅(견요자투라) : 새매 보고 스스로 그물에 걸리는 것을 羅家得雀喜(라가득작희) : 그물 친 사람 새 얻고 좋아하나 少年見雀悲(소년견작비) : 소년은 새보고 슬퍼하여 拔劍捎羅網(발검소라망) : 칼을 뽑아 그물을 끊어주니 黃雀得飛飛(황작득비비) : 참새는 자유로이 훨훨 날아가는도다 飛飛摩蒼天(비비마창천) : 훨훨 푸른 하늘에 닿아 來下謝少年(내하사소년) : 내려와 소년에게 감사하는구나 || 하지만 어마어마한 명성에 비해 작품의 인지도는 이백이나 두보에 비해 별로 없다. 일반인들에게 조식의 작품을 물으면 기껏해야 원작자도 확실치 않은 칠보시나 언급되는 수준이며 좀 안다는 삼덕이나 역덕 레벨에서도 대부분 낙신부, 백마편이나 들어봤을 정도. 조식의 재능과 명성에 거품이 있어서는 아니고 시문이라는 것이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하는 것이라 서기 3세기 위나라 사람인 조식의 작품은 짧게 몇마디로 끝나는 당나라 시인 이백, 두보의 작품보다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문도라는 앱에 조식의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궁금한 사람은 참고하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